
오늘의 말씀과 묵상.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11/12/2021) <제1독서> ▥ 지혜서의 말씀입니다. 13,1-9 1 하느님에 대한 무지가 그 안에 들어찬 사람들은 본디 모두 아둔하여 눈에 보이는 좋은 것들을 보면서도 존재하시는 분을 보지 못하고 작품에 주의를 기울이면서도 그것을 만든 장인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2 오히려 불이나 바람이나 빠른 공기, 별들의 무리나 거친 물, 하늘의 빛물체들을 세상을 통치하는 신들로 여겼다. 3 그 아름다움을 보는 기쁨에서 그것들을 신으로 생각하였다면 그 주님께서는 얼마나 훌륭하신지 그들은 알아야 한다. 아름다움을 만드신 분께서 그것들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4 또 그것들의 힘과 작용에 감탄하였다면 바로 그것들을 보고 그것들을 만드신 분께서 얼마나 힘이 세신지 알아야 한다. 5 피조물의 웅대함과 아름다움으로 미루어 보아 그 창조자를 알 수 있다. 6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크게 탓할 수는 없다. 그들은 하느님을 찾고 또 찾아낼 수 있기를 바랐지만 그러는 가운데 빗나갔을지도 모른다. 7 그들은 그분의 업적을 줄곧 주의 깊게 탐구하다가 눈에 보이는 것들이 하도 아름다워 그 겉모양에 정신을 빼앗기고 마는 것이다. 8 그러나 그들이라고 용서받을 수는 없다. 9 세상을 연구할 수 있을 만큼 많은 것을 아는 힘이 있으면서 그들은 어찌하여 그것들의 주님을 더 일찍 찾아내지 못하였는가?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26-3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6 “사람의 아들의 날에도 노아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였는데, 홍수가 닥쳐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28 또한 롯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짓고 하였는데, 29 롯이 소돔을 떠난 그날에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쏟아져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30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는 날에도 그와 똑같을 것이다. 31 그날 옥상에 있는 이는 세간이 집 안에 있더라도 그것을 꺼내러 내려가지 말고, 마찬가지로 들에 있는 이도 뒤로 돌아서지 마라. 32 너희는 롯의 아내를 기억하여라. 33 제 목숨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살릴 것이다. 3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날 밤에 두 사람이 한 침상에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35 두 여자가 함께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36)·37 제자들이 예수님께, “주님, 어디에서 말입니까?”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도 모여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나무는 자신의 비참함을 알지 못한다. 자신이 비참하다는 것을 아는 것은 비참한 일이지만, 인간이 비참하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위대하다.”(파스칼) 온 세상의 수많은 존재가 자연에 순응하며 자신을 자연의 흐름에 맞추어 살아갑니다. 유독 인간만이 자연을 때로는 자신에게 순응시키며 발전해갑니다. 인간의 위대함이 여기에 있습니다. 수만 년의 세월 동안 인간은 계속 진보, 발전해 왔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또한 그 안에 여전히 비참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죽음이라는 실재가 바로 그 비참함의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위대함과 비참함의 틈이 우리를 불안하게 합니다. 이 틈을 참으로 알 때 참된 지혜가 생겨납니다. 불안의 이유를 비로소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오늘 지혜서의 말씀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세상을 연구할 수 있을 만큼 많은 것을 아는 힘이 있으면서 그들은 어찌하여 그것들의 주님을 더 일찍 찾아내지 못하였는가?” 우주의 역사보다 오래된 주님의 흔적을 쫓아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불안을 넘어서고 평화를 얻게 됩니다. 때로 사람들은 하느님의 존재를 인간이 필요로 하여 만들어 낸 그 무엇처럼 말하지만, 그저 그것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할 뿐, 하느님의 존재는 언제나 영원으로 머물러 계십니다. 하느님을 찾고 발견하여 자신의 하느님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위령성월을 지냅니다. 오직 이제는 하느님의 자비에 맡겨진 이들에게 하느님의 구원이 함께 하기를 기도드립니다. 오늘 나의 그리스도인 된 이유 중 하나가 그들의 영혼을 위해 하느님께 희망하며 기도할 수 있는 것임을 알게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나는 믿음의 길에 서서 하느님을 희망하며 갈망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구원이 지금 여기에서 시작되고 있음을 압니다. 주님의 평화가 언제나 함께 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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