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과 묵상

Title오늘의 말씀과 묵상. 연중 제23주일(09/04/2022)2022-09-04 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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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과 묵상. 연중 제23주일(09/04/2022)

 

<1독서> 지혜서 9, 13-18

13 어떠한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알 수 있겠습니까? 누가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14 죽어야 할 인간의 생각은 보잘것없고, 저희의 속마음은 변덕스럽습니다.

15 썩어 없어질 육신이 영혼을 무겁게 하고 흙으로 된 이 천막이 시름겨운 정신을 짓누릅니다.

16 저희는 세상 것도 거의 짐작하지 못하고 손에 닿는 것조차 거의 찾아내지 못하는데 하늘의 것을 밝혀낸 자 어디 있겠습니까?

17 당신께서 지혜를 주지 않으시고 그 높은 곳에서 당신의 거룩한 영을 보내지 않으시면 누가 당신의 뜻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18 그러나 그렇게 해 주셨기에 세상 사람들의 길이 올바르게 되고 사람들이 당신 마음에 드는 것이 무엇인지 배웠으며 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2독서> 사도 바오로의 필레몬 9-10.12-17

 

사랑하는 그대여, 9 나 바오로는 늙은이인 데다가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님 때문에 수인까지 된 몸입니다.

10 이러한 내가 옥중에서 얻은 내 아들 오네시모스의 일로 그대에게 부탁하는 것입니다.

12 나는 내 심장과 같은 그를 그대에게 돌려보냅니다.

13 그를 내 곁에 두어, 복음 때문에 내가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그대 대신에 나를 시중들게 할 생각도 있었지만,

14 그대의 승낙 없이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대의 선행이 강요가 아니라 자의로 이루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15 그가 잠시 그대에게서 떨어져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를 영원히 돌려받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16 이제 그대는 그를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종 이상으로, 곧 사랑하는 형제로 돌려받게 되었습니다. 그가 나에게 특별히 사랑받는 형제라면, 그대에게는 인간적으로 보나 주님 안에서 보나 더욱 그렇지 않습니까?

17 그러므로 그대가 나를 동지로 여긴다면, 나를 맞아들이듯이 그를 맞아들여 주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 14, 25-33

 

그때에 25 많은 군중이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돌아서서 이르셨다.

26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7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8 너희 가운데 누가 탑을 세우려고 하면, 공사를 마칠 만한 경비가 있는지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느냐?

29 그러지 않으면 기초만 놓은 채 마치지 못하여, 보는 이마다 그를 비웃기 시작하며,

30 ‘저 사람은 세우는 일을 시작만 해 놓고 마치지는 못하였군.’ 할 것이다.

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가려면, 이만 명을 거느리고 자기에게 오는 그를 만 명으로 맞설 수 있는지 먼저 앉아서 헤아려 보지 않겠느냐?

32 맞설 수 없겠으면, 그 임금이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평화 협정을 청할 것이다.

33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하느님 나라의 계산서

 

때때로 예수님의 가르침은 너무나 명확해서 무엇을 더하거나 덜할 필요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분의 제자가 되려면 자기 소유를 다 버려야만 한다는 오늘의 가르침 또한 그러합니다.

그분의 제자가 되려면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자신의 소유를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버려도 쌓입니다.

다 버렸다 싶은데도 어느새 집안 한가득 물건이 가득차 있습니다.

내 마지막 순간에 가져갈 것 하나 없는데도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의 필요 때문이라 말하며 채웠다 버리기를 반복합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모든 것을 비운다는 것은 상징적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내려놓음과 비움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을 더 깊이 따르기 위해서입니다.

그냥 물건을 쌓아두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주님을 더 깊이 따르기 위해 우리 자신을 가볍게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비움은 비단 물질적인 것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영적 차원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비우고 내려놓아야 합니다.

 

자기 뜻과 의지, 자신이 믿고 있는 삶의 체계를 하느님 나라의 기준에 맞추어 버려야 합니다.

종종 하느님의 뜻과 내 뜻이 충돌하거나 다툴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자기의 뜻을 내려놓고 하느님의 뜻을 앞세워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내려놓음과 비움입니다.

 

고통을 피하고 싶지만, 고통을 껴안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고통을 피하고 싶은 것은 본능이지만, 그 본능마저 꺾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꿈꾸는 행복을 하느님 때문에 포기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리고 계획하는 그 모든 것이

그리고 그 가진 모든 것이,

하느님의 뜻에 맞는 것인지 끊임없이 물어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순간 서로의 계산이 어긋나 있습니다.

 

우리가 맞이하는 이 9월은 순교자 성월이기도 합니다.

목숨을 유지하는 것이 본능이라면, 목숨마저 기꺼이 내어놓으신 그분들의 뜻이 무엇이었는지도 새겨보면 좋겠습니다.

적당한 때에는 쉽게 타협이 가능한 것도

내몰리면 타협조차 할 여지가 없게 됩니다.

그때 분명한 것은 내려놓든지 움켜쥐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할 때 나의 모습일 것입니다.

 

무엇이 더 중할까요?

오늘 쉽게 타협해 버린 것들이 내일은 내려놓음으로 바뀔 수 있다고 그렇게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순간이 모여 일상이 됩니다.

 

부디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한 가르침에 삶을 장식하는 멋진 장신구이거나 한 번의 찬란한 깨달음으로 끝나지 않는 우리의 일상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주님의 평화와 주님께로부터 오는 참된 지혜가 우리의 삶을 이루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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