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과 묵상

Title오늘의 말씀과 묵상. 2023년 12월 17일 주일(대림 제3주일. 자선 주일)2023-12-16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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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jpg


오늘의 말씀과 묵상. 20231217일 주일(대림 제3주일. 자선 주일)

 

<1독서>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61,1-2.10-11

 

1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 하느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어 주며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갇힌 이들에게 석방을 선포하게 하셨다.

2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10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내 영혼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니 신랑이 관을 쓰듯 신부가 패물로 단장하듯 그분께서 나에게 구원의 옷을 입히시고 의로움의 겉옷을 둘러 주셨기 때문이다.

11 땅이 새순을 돋아나게 하고 정원이 싹을 솟아나게 하듯 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민족들 앞에 의로움과 찬미가 솟아나게 하시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2독서> 사도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1서 말씀입니다. 5,16-24

 

형제 여러분, 16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17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18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19 성령의 불을 끄지 마십시오. 20 예언을 업신여기지 마십시오.

21 모든 것을 분별하여, 좋은 것은 간직하고

22 악한 것은 무엇이든 멀리하십시오.

23 평화의 하느님께서 친히 여러분을 완전히 거룩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을 온전하고 흠 없이 지켜 주시기를 빕니다.

24 여러분을 부르시는 분은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니 그렇게 해 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8.19-28

 

6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7 그는 증언하러 왔다. 빛을 증언하여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8 그 사람은 빛이 아니었다.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19 요한의 증언은 이러하다.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었을 때,

20 요한은 서슴지 않고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하고 고백한 것이다.

21 그들이 그러면 누구란 말이오? 엘리야요?” 하고 묻자, 요한은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그 예언자요?” 하고 물어도 다시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2 그래서 그들이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우리가 대답을 해야 하오.

당신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이오?”

23 요한이 말하였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24 그들은 바리사이들이 보낸 사람들이었다.

25 이들이 요한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

26 그러자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27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28 이는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르단 강 건너편 베타니아에서 일어난 일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성탄9일기도(17) 둘째 날 1217: 헤로데 (마태 2,1-3. 7-9.16) - 예수 그리스도의 힘

 

예수는 그의 삶 전체를 통해 힘의 전혀 다른 의미를 보여줍니다.

헤로데는 아기와 같은 가난하고 약한 이들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마치 세례자 요한이 그를 책망하듯 그들의 약함으로 그의 악함을 고발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하여 예수는 죄인, 병자, 가난한 이들을 찾으려 스스로 그들에게 가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힘은 용서입니다.

우리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드러나는 용서,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확연히 드러난 용서입니다.

사람들과의 만남 안에서 그분이 가장 먼저 생각하신 것은

죄로부터의 해방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방탕한 아들을 인내롭게 기다려주고,

그를 껴안아 주심으로 사랑과 선함을 드러내 보이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힘을 증언합니다.

용서는 또한 교회 안에서 화해의 성사를 통해 표현되어지고,

구원된 이의 자유로움으로 표현됩니다.

그러기에 모든 성체성사는 용서의 기도가 됩니다.

 

용서는 힘의 반대입니다.

그리스도의 힘은 기쁨의 태도이고,

어떤 것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이며,

우리를 성덕에로 직접 다다르게 하는 희망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이 지닌 모든 종류의 두려움을 떨쳐 버리는 방법으로,

그분의 고요하고 신뢰깊은 친밀감으로 인간에게 다가가길 원하셨습니다.

누가 임신한 젊은 여인에게 두려움을 느끼겠습니까?

누가 미소 짓는 무죄한 아기에게 두려움을 느끼겠습니까?

누가 병자와 걸인들을 돌보고 죄인에 대해 용서를

가르치는 사람에게 두려움을 느끼겠습니까?

결국 누가 십자가 위에서 못 박힌 사람에게 두려움을 느끼겠습니까?

 

다만 죄인들을 용서하길 거부하고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자신의 구원을 거절하는 사람만이 예수께 두려움을 갖기 마련입니다.

 

 

* 묵상요점 ; 내 안에 두려움을 갖게 하는 헤로데의 요소는 무엇입니까?

성체 앞에 고요히 머물며 내가 지닌 두려움을 모두 떨쳐 버리기를

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힘을 묵상해 봅시다.

 

Second Day

 

God's Love Revealed In His Being Born An Infant.

 

Thought:

When the Son of God became man for our sake, He could have come on earth as an adult man from the first moment of of His human existence, as Adam did when he was created. But since the sight of little children draws us with an especial attraction to love them, Jesus chose to make His first appearance on earth as a little infant, and indeed as the poorest and most pitiful infant that was ever born. "God wished to be born as a little babe," wrote Saint Peter Chrysologus, "in order that He might teach us to love and not to fear Him." The prophet Isaias had long before foretold that the Son of God was to be born as an infant and thus give Himself to us on account of the love He bore us: "A child is born to us, a son is given to us."

 

My Jesus, supreme and true God! What has drawn Thee from heaven to be born in a cold stable, if not the love which Thou bearest us men? What has allured Thee from the bosom of Thy Father, to place Thee in a hard manger? What has brought Thee from Thy throne above the stars, to lay Thee down on a little straw? What has led Thee from the midst of the nine choirs of angels, to set Thee between two animals? Thou, who inflamest the seraphim with holy fire, art now shivering with cold in this stable! Thou, who settest the stars in the sky in motion, canst not now move unless others carry Thee in their arms! Thou, who givest men and beasts their food, has need now a little milk to sustain Thy life! Thou, who art the joy of heaven, dost now whimper and cry in suffering! Tell me, who has reduced Thee to such misery? "Love has done it," says Saint Bernard. The love which Thou bearest us men has brought all this on Thee.

 

 

Prayer:

O Dearest Infant! Tell me, what hast Thou come on earth to do? Tell me, whom art Thou seeking? Yes, I already know. Thou has come to die for me, in order to save me from hell. Thou hast come to seek me, the lost sheep, so that, instead of fleeing from Thee any more, I may rest in Thy loving arms.

Ah my Jesus, my treasure, my life, my love and my all! Whom will I love, if not Thee? Where can I find a father, a friend, a spouse more loving and lovable than Thou art? I love Thee, my dear God; I love Thee, my only good. I regret the many years when I have not loved Thee, but rather spurned and offended Thee.

 

Forgive me, O my beloved Redeemer; for I am sorry that I have thus treated Thee, and I regret it with all my heart. Pardon me, and give me the grace never more to withdraw from Thee, but constantly to love Thee in all the years that still lie before me in this life. My love, I give myself entirely to Thee; accept me, and do not reject me as I deserve.

 

O Mary, thou art my advocate. By thy prayers thou dost obtain whatever thou wilt from thy Son. Pray Him then to forgive me, and to grant me holy perseverance until death.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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