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과 묵상. 2023년 12월 18일 월요일 <제1독서>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23,5-8 5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다윗을 위하여 의로운 싹을 돋아나게 하리라. 그 싹은 임금이 되어 다스리고 슬기롭게 일을 처리하며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루리라. 6 그의 시대에 유다가 구원을 받고 이스라엘이 안전하게 살리라.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주님은 우리의 정의’라고 부르리라. 7 그러므로 이제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때에는 사람들이 더 이상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살아 계신 주님을 두고 맹세한다.” 하지 않고, 8 그 대신 “이스라엘 집안의 후손들을 북쪽 땅에서, 그리고 당신께서 쫓아 보내셨던 모든 나라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살아 계신 주님을 두고 맹세한다.”할 것이다. 그때에 그들은 자기 고향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8-24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2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24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셋째 날 12월 18일 : 동방박사들(마태 2,1-2. 7-12) - 순례자 예수님께서는 헤로데 임금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러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을 몰래 불러 별이 나타난 시간을 정확히 알아내고서는,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말하였다. “가서 그 아기에 관하여 잘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 그들은 임금의 말을 듣고 길을 떠났다. 그러자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그들은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 ********************************************************************* 별을 따라온 동방박사들의 선택은 단순한 과학적, 역사적, 이성적인 작용 이었다기 보다는, 그 보다 더 높은 그 무엇에 의한 것 이었습니다. 그것은 물질적인 것을 넘어선 진리를 추구이며 직관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하느님으로부터 온 말씀을 따르는 용기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구원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신앙입니다. 비록 그들은 길의 안전함을 알지 못했고,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별과 하늘과 하느님의 지시를 따라 걸었습니다. 그들은 계산하지 않았고 믿고 나아 갔으며, 인간의 예측을 넘어선 신비에 머물렀습니다. 사람들은 정치적인 왕을 기다렸으나, 그들은 더 크고 신비로운 하늘의 “표징”을 찾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구원을 추구하는 순례자가 되었고 이것은 인간성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순례는 모든 문화안에 있는 삶의 모습입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이나 베델을 향하여 나아갔고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이 성지를 순례합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렇듯 순례자입니다. 순례는 자신의 안전을 남겨놓고 하느님을 찾아 떠나는 그리스도의 삶의 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순례 안에는 금욕과 극기, 화해가 있습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는 깨어있음이, 용기를 잃지 않고 지나간 과거속의 무기력에 떨어지지 않으려는 깨어있음이 있습니다. 순례는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 최상의 선과 온전한 인간을 찾으러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순례는 모든 확실함과 안전함을 뒤로한 채, 미지의 것을 추구하는 침묵과 고독 속에서 이루어지며 여행의 어려움과 위험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극복하고 순례의 고독 속에서 견고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하느님의 확실성입니다. * 묵상요점 : 끊임없이 다가오는 삶의 도전 속에서, 나는 안일함과 무기력 내 자신 에게서 벗어서 어떤 별빛을 따라 걷고 있습니까? Third Day. The Life Of Poverty Which Jesus Led From His Birth. Thought: God so ordained that, at the time when His Son was to be born on this earth, the Roman emperor should issue a decree ordering everyone to go to the place of his origin and there be registered in the census. Thus it came about that, in obedience to this decree, Joseph went to Bethlehem together with his virgin wife when she was soon to have her Child. Finding no lodging either in the poor inn or in the other houses of the town, they were forced to spend the night in a cave that was used as a stable for animals, and it was here that Mary gave birth to the King of heaven. If Jesus had been born in Nazareth, He would also, it is true, have been born in poverty; but there He would at least have had a dry room, a little fire, warm clothes and a more comfortable cradle. Yet He chose to be born in this cold, damp cave, and to have a manger for a cradle, with prickly straw for a mattress, in order that He might suffer for us. Let us enter in spirit into this cave of Bethlehem, but let us enter in a spirit of lively faith. If we go there without faith, we shall see nothing but a poor infant, and the sight of this lovely child shivering and crying on his rough bed of straw may indeed move us to pity. But if we enter with faith and consider that this Babe is the very Son, God, who for love of us has come down on earth and suffers so much to pay the penalty for our sins, how can we help thanking and loving Him in return? Prayer: O Dear Infant Jesus, how could I be so ungrateful and offend Thee so often, if I realized how much Thou hast suffered for me? But these tears which Thou sheddest, this poverty which Thou embracest for love of me, make me hope for the pardon of all the offenses I have committed against Thee. My Jesus, I am sorry for having so often turned my back on Thee. But now I love Thee above all else. "My God and my all!" From now on Thou, O my God, shalt be my only treasure and my only good. With Saint Ignatius of Loyola I will say to Thee, "Give me the grace to love Thee; that is enough for me." I long for nothing else; I want nothing else. Thou alone art enough for me, my Jesus, my life, my love. O Mary, my Mother, obtain for me the grace that I may always love Jesus and always be loved by Him. Ame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