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과 묵상. 부활 제4주간 금요일(5/8/2020)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어 약속을 실현시켜 주셨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3,26-33 그 무렵 바오로가 피시디아 안티오키아에 가 회당에서 말하였다. 26 “형제 여러분, 아브라함의 후손 여러분, 그리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이 구원의 말씀이 바로 우리에게 파견되셨습니다. 27 그런데 예루살렘 주민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단죄하여, 안식일마다 봉독되는 예언자들의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였습니다. 28 그들은 사형에 처할 아무런 죄목도 찾아내지 못하였지만, 그분을 죽이라고 빌라도에게 요구하였습니다. 29 그리하여 그분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을 그들이 그렇게 다 이행한 뒤, 사람들은 그분을 나무에서 내려 무덤에 모셨습니다. 30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31 그 뒤에 그분께서는 당신과 함께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이들에게 여러 날 동안 나타나셨습니다. 이 사람들이 이제 백성 앞에서 그분의 증인이 된 것입니다. 32 그래서 우리는 여러분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우리 선조들에게 하신 약속을, 33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어 그들의 후손인 우리에게 실현시켜 주셨습니다. 이는 시편 제이편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1-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2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 3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4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5 그러자 토마스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찬미예수님. 형제 자매 여러분, 잘 지내시죠? 오늘은 어버이날이네요. 한국 시간으로는 이제 어버이날이 지나가지만 여기 시간으로는 오늘이 어버이날입니다. 모든 어버이를 기억하며 그분들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리며 행복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먼제 세상을 떠나신 부모님들이 계시다면 주님 안에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기를 아울러 기도드립니다. 주님께서 우리 부모님께 건강을 허락하시고 평화로이 그분들의 날들을 지켜주시기를. 예수님은 당신 스스로를 아버지와 하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 모두의 부모이십니다. 창세기의 이야기에서 이 땅과 우주 만물을 낳으신 어버이로서 하느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아버지이시고 어머니이십니다. 사실 하느님에게 인간과 동물같은 성적 역할이나 특성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우리 부모님이시고, 성경 언어는 우리에게 이 특성을 하느님은 아버지라고 말해 주지만 실제적 의미는 어머니이시고 아버지이신 하느님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겠습니다. 어쨌든 하느님은 우리의 어버이십니다. 하느님께 카네이션 한 송이 달아드리고 싶은 오늘입니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매일 전화로 안부를 여쭙습니다. 저야 따로 성당 가족이 있지만 육신으로는 아내나 아이가 없으니 오직 부모님을 향해 온전히 마음을 기울입니다. 어쩌다 하루 전화를 못드리면 그것마저도 굉장히 궁금해하시네요. 혹시 무슨 일이 있나? 부모 마음 모두 그와 같습니다. 자식의 마음은 내리사랑이라 조금 다르겠지요. 아무리 부모님께 최선을 다해도 부모님 마음 같겠습니까? 저는 종종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가 꼭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자녀들인 우리는 하느님께 마지막까지 효성스럽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본당의 사제와 신자와의 관계도 영적으로는 이와 같습니다. 서로를 위한 염려가 잔소리가 될 수도 있고 뜻이 다를 수도 있지만, 우리가 서로를 위한 사랑으로 서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사석에서도 자기 본당 신자들 욕하는 신부를 잘 보지 못했습니다. 본당 신자들은 본당 신부님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하겠지요. 안보이는 데서는 나랏님도 욕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그 정도는 애교가 될 겁니다. 죄송한 것은, 여러분이 보이는 사랑만큼 저의 사랑이 크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입니다. 저의 여러분을 위한 사랑이 하느님의 여러분에 대한 사랑만큼은 아니더라도 더욱 커질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여러분을 위한 저의 기도는 매일 묵주 기도 5단입니다. 건강하시고 건강하시고 평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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