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과 묵상. 대림 제2주간 토요일(12/11/2021) <제1독서> ▥ 집회서의 말씀입니다. 48,1-4.9-11 그 무렵 1 엘리야 예언자가 불처럼 일어섰는데 그의 말은 횃불처럼 타올랐다. 2 엘리야는 그들에게 굶주림을 불러들였고 자신의 열정으로 그들의 수를 감소시켰다. 3 주님의 말씀에 따라 그는 하늘을 닫아 버리고 세 번씩이나 불을 내려보냈다. 4 엘리야여, 당신은 놀라운 일들로 얼마나 큰 영광을 받았습니까? 누가 당신처럼 자랑스러울 수 있겠습니까? 9 당신은 불 소용돌이 속에서 불 마차에 태워 들어 올려졌습니다. 10 당신은 정해진 때를 대비하여 주님의 분노가 터지기 전에 그것을 진정시키고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되돌리며 야곱의 지파들을 재건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1 당신을 본 사람들과 사랑 안에서 잠든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우리도 반드시 살아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10-13 산에서 내려올 때에 10 제자들이 예수님께, “율법 학자들은 어찌하여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 하고 물었다. 11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과연 엘리야가 와서 모든 것을 바로잡을 것이다. 12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그처럼 사람의 아들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13 그제야 제자들은 그것이 세례자 요한을 두고 하신 말씀인 줄을 깨달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믿음은 들음에서 시작하고 수많은 물음을 통해 성장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을 던지고 예수님께서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합니다. 그리고 그 답을 통해 그들은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어떤 때에는 물어보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나 많이 돌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너무 많이 돌아가다 보면 누구나 지치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어렵지 않아 보이는 것도 내 문제가 되면 힘든 것도 그 때문입니다. 질문하지 않기에 나중에는 답을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도 보게 됩니다. 한때 스페인 축구를 호령하던 FC 바르셀로나의 축구 전술 중에 “티키타카”가 있습니다. 마치 탁구를 할 때 탁구공을 이리저리 주고받는 것처럼 선수들이 공을 한 번에 붕 띄워 차는 것이 아니라 티키타카 하며 전방까지 압박해가는 전술이었는데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마치 시간을 빨리 돌리고 있는 것처럼 유려하고 빠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주고받기 위해 그 주고받음을 얼마나 연습하였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신앙 삶에도 그런 티키타카가 있어야 할 텐데 하는 아쉬움이 항상 있습니다. 믿음은 들어도 이해되지 않으니 그냥 믿지 뭐 하거나, 막상 물어도 시원한 대답이 없는 것 같으니 다른 곳에 물어보지 뭐 하거나입니다. 그러니 성실함은 있어도 머리가 확 깨어나는 것 같은 환희와 기쁨은 적지 않을까 싶습니다. 교회가 가르치는 것을 존중하는 삶이야 훌륭합니다. 수천 년의 지혜가 그 안에 녹아있으니 물론 우리 각자의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교회 안에 주어져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산을 오르는 길이 여러 갈래이듯이, 또 새로운 길이 생겨나듯이, 신앙의 이해를 넓히는 수많은 질문은 신학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의 개별 삶에서부터 시작되어야 더욱 풍요로워지지 않을까요? “자, 다음 질문하실 분?” 그러니 아무도 물어보지 않습니다. 당신은 자신의 삶에서 자신의 믿음을 키워가기 위해 어리석은 질문처럼 여겨지는 것이라도 마음껏 던져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행위가 당신의 평온을 깨뜨릴 수 있겠지만, 당신의 평화가 더욱 굳건해지도록 만들어 줄 것입니다. 주님 안의 평화가 함께 하시는 은총의 오늘을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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