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과 묵상. 연중 제17주간 금요일(07/30/2021) <제1독서> ▥ 레위기의 말씀입니다. 23,1.4-11.15-16.27.34ㄴ-37 1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4 “너희가 정해진 때에 소집해야 하는 거룩한 모임, 곧 주님의 축일들은 이러하다. 5 첫째 달 열나흗날 저녁 어스름에 주님의 파스카를 지켜야 한다. 6 이달 보름에는 주님의 무교절을 지내는데, 너희는 이레 동안 누룩 없는 빵을 먹어야 한다. 7 첫날에는 거룩한 모임을 열고, 생업으로 하는 일은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된다. 8 그리고 이레 동안 주님에게 화제물을 바쳐야 한다. 이레째 되는 날에는 다시 거룩한 모임을 열고, 생업으로 하는 일은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된다.” 9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10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일러라.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으로 들어가서 수확을 거두어들일 때, 너희 수확의 맏물인 곡식 단을 사제에게 가져와야 한다. 11 사제는 그 곡식 단이 너희를 위하여 호의로 받아들여지도록 주님 앞에 흔들어 바친다. 사제는 그것을 안식일 다음 날 흔들어 바친다. 15 너희는 안식일 다음 날부터, 곧 곡식 단을 흔들어 바친 날부터 일곱 주간을 꽉 차게 헤아린다. 16 이렇게 일곱째 안식일 다음 날까지 오십 일을 헤아려, 새로운 곡식 제물을 주님에게 바친다.’ 27 또한 일곱째 달 초열흘날은 속죄일이다. 너희는 거룩한 모임을 열고 고행하며, 주님에게 화제물을 바쳐야 한다. 34 ‘이 일곱째 달 보름날부터 이레 동안은 주님을 위한 초막절이다. 35 그 첫날에는 거룩한 모임을 열고, 생업으로 하는 일은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된다. 36 너희는 이레 동안 주님에게 화제물을 바친다. 여드레째 되는 날에는 다시 거룩한 모임을 열고, 주님에게 화제물을 바친다. 이날은 집회일이므로, 너희는 생업으로 하는 일은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된다. 37 이는 너희가 거룩한 모임을 소집해야 하는 주님의 축일들로서, 이때 너희는 그날그날에 맞는 번제물과 곡식 제물과 희생 제물과 제주를 주님에게 화제물로 바쳐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54-58 그때에 54 예수님께서 고향에 가시어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그러자 그들은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55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지 않나? 그리고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 56 그의 누이들도 모두 우리와 함께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57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58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 그곳에서는 기적을 많이 일으키지 않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고향사람들이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이유인 즉 자신들이 잘 알고 있는 예수님은 그리 대단한 존재가 아니었었는데, 놀라운 지혜의 말씀을 전하고 기적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몇몇은 오늘 복음에 나오는 말보다 더 심한 ‘사기꾼’이라고 비아냥거리거나 비난했을 수도 있습니다. 정작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이가 가장 낯선 이로 다가올 때 그 비난과 질투의 감정은 더 심해집니다. 오랜만에 동창생 모임에 나갔다가 옛날 학창 시절에는 나보다 덜 예쁘고 덜 똑똑하고 더 가난했던 이가 멋지게 차려입고 무슨 회사의 중역쯤 행세를 하면 그렇게 속이 불편한 감정처럼 말입니다. 왜 그럴까요? “질투는 나의 힘”이라서 그럴까요? 멋지게 잘 되었다고 박수치면서 응원해주고 진심으로 아껴줄 수 없는 것일까요? 질투 때문에 유치해 져 본 경험이 있는 이들은 제가 오늘 드리는 말씀을 잘 이해할 수 있을 터이지요. 유치해져서 제대로 보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합니다.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니 인정하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니 분별(식별)이 제대로 될 리 없습니다. 잘못된 식별로 인해 올바른 판단이 되지 않습니다. 변화를 인정하는 것, 그것이 지혜입니다. 매일 변하고 매 순간 변하는 것입니다.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전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 비로소 성장합니다. 당신은 자신과 타인의 변화에 대해 수용할 수 있습니까? 당신이 오늘 만나는 모든 대상은 어제와는 사뭇 다른 존재임을 당신은 받아들입니까? 형제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하느님인들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무엇이 당신을 진정 괴롭히는 것인지 깨달을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남이 잘 되면 나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아갈 오늘이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