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절설교]성령을 받으라](https://img1.daumcdn.net/thumb/R800x0/?scode=mtistory2&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cfile%2Ftistory%2F997DD5435AB5A94A0B)
오늘의 말씀과 묵상. 부활 제6주간 화요일(05/11/2021) <제1독서>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6,22-34 그 무렵 필리피의 22 군중이 합세하여 바오로와 실라스를 공격하자, 행정관들은 그 두 사람의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고 지시하였다. 23 그렇게 매질을 많이 하게 한 뒤 그들을 감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단단히 지키라고 명령하였다. 24 이러한 명령을 받은 간수는 그들을 가장 깊은 감방에 가두고 그들의 발에 차꼬를 채웠다. 25 자정 무렵에 바오로와 실라스는 하느님께 찬미가를 부르며 기도하고, 다른 수인들은 거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26 그런데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 감옥의 기초가 뒤흔들렸다. 그리고 즉시 문들이 모두 열리고 사슬이 다 풀렸다. 27 잠에서 깨어난 간수는 감옥 문들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고 하였다. 수인들이 달아났으려니 생각하였던 것이다. 28 그때에 바오로가 큰 소리로, “자신을 해치지 마시오. 우리가 다 여기에 있소.” 하고 말하였다. 29 그러자 간수가 횃불을 달라고 하여 안으로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면서 바오로와 실라스 앞에 엎드렸다. 30 그리고 그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두 분 선생님, 제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31 그들이 대답하였다. “주 예수님을 믿으시오.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오.” 32 그리고 간수와 그 집의 모든 사람에게 주님의 말씀을 들려주었다. 33 간수는 그날 밤 그 시간에 그들을 데리고 가서 상처를 씻어 주고, 그 자리에서 그와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다. 34 이어서 그들을 자기 집 안으로 데려다가 음식을 대접하고, 하느님을 믿게 된 것을 온 집안과 더불어 기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5-11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5 “이제 나는 나를 보내신 분께 간다. 그런데도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너희 가운데 아무도 없다. 6 오히려 내가 이 말을 하였기 때문에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 찼다. 7 그러나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는데,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8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9 그들이 죄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고, 10 그들이 의로움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내가 아버지께 가고 너희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며, 11 그들이 심판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이미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아이들은 크면 부모 곁을 떠납니다. 모든 부모의 바람은 자식과 함께 늙어가는 것이지만 늘 곁에만 둘 수는 없는 법입니다. 때로는 떠남은 더 큰 성장을 위한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아쉬울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모든 자식이 부모를 떠나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와 함께 부모 곁에서 같이 있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래도 정서적인 떠남을 부모는 허락해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섭섭할지라도 말입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시기를 사춘기라고 합니다. 인생에는 결정적 순간의 사춘기가 있습니다. 떠남과 성장, 퇴보와 자신만의 발전을 이루는 시기가 있습니다. 그렇게 인간들은 하느님 안에서도 사춘기를 겪습니다. 이 시기를 잘 보내야만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도 성장될 수 있습니다. 떠나야만 볼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머물면서 볼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떠나야만 볼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집을 나간 둘째 아들이 비로소 깨달아 알게 된 것(루카복음 15장입니다)이 있습니다. 머물던 큰아들은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늘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 안에 있었지만 깨닫는 것은 이토록 다릅니다. 부모는 자식의 참된 성장을 바라야 합니다. 자식이 깨달을 수 있는 것을 허락해주어야 합니다. 저희 사제들이 그토록 사랑하던 교우들의 곁을 떠난 새로운 곳으로 향하는 마음도 이와 갑습니다. 눈물이 나고 걱정이 되고 이제 비로소 알게 된 것들이 아쉽기만 할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떠나면 비로소 알게 됩니다. 물론 제가 떠난다는 말씀은 아니구요. 깨닫지 못하면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합니다. 머물며 깨닫는 것, 떠나면 깨닫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 오직 그럴 뿐입니다. 예수님의 떠나심으로 제자들은 더욱 강화된 자신의 삶을 살았습니다.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알게 됩니다. 떠남이 진정한 머뭄이라는 것을요. 성장을 위한 오늘이시길 기도드려요. 성령께서 당신의 오늘을 비춰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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