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과 묵상. 연중 제29주일.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전교주일(10/18/2020) 제1독서 <모든 민족들이 주님의 산으로 밀려들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2,1-5 1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환시로 받은 말씀. 2 세월이 흐른 뒤에 이러한 일이 이루어지리라.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은 모든 산들 위에 굳게 세워지고 언덕들보다 높이 솟아오르리라. 모든 민족들이 그리로 밀려들고 3 수많은 백성들이 모여 오면서 말하리라. “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느님 집으로! 그러면 그분께서 당신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시어 우리가 그분의 길을 걷게 되리라.” 이는 시온에서 가르침이 나오고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말씀이 나오기 때문이다. 4 그분께서 민족들 사이에 재판관이 되시고 수많은 백성들 사이에 심판관이 되시리라. 그러면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 5 야곱 집안아, 자,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10,9-18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9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0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11 성경도 “그를 믿는 이는 누구나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 하고 말합니다. 12 유다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차별이 없습니다. 같은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으로서, 당신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13 과연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4 그런데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15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16 그러나 모든 사람이 복음에 순종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사야도 “주님, 저희가 전한 말을 누가 믿었습니까?” 하고 말합니다.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18 그러나 나는 묻습니다. 그들이 들은 적이 없다는 것입니까? 물론 들었습니다. “그들의 소리는 온 땅으로, 그들의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8,16-20 그때에 16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17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18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사는 이 콜로라도 주에는 약 30,000명의 한인동포가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스프링스와 푸에블로까지 포함하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지역신문들을 보면 보통 그렇게 말합니다. 그 중에는 한인 1.5세, 혹은 2세도 살아가고 있고 미국 시민권자나 영주권자도 많을 터입니다. 어찌되었던 그 삼만명 중에 그리스도인은 얼마쯤이나 될까 싶습니다. 스프링스 성당과 우리 덴버 성당에 대략 1000명 정도라고 한다면. 비율은 얼마나 될까요? 그리고 또 생각해봅니다. 우리가 믿음의 길에 들어선 이래 지금까지 이 길에 함께 하자고 초대한 이는 얼마나 되는지요? 어르신들을 만나뵈면 늘 자식들의 신앙 걱정이 그 1순위입니다. 이제 나이 들고 자신의 한계를 체험하면서부터 신앙이 가져다주는 위로와 평안이 얼마나 큰지 알기 때문에 어르신들은 자식들도 당신들과 같은 신앙의 길을 걸어가주기를 힘써 기도하고 늘 염려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위의 말씀을 다시 마음에 새겨봅니다.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당신의 신앙의 선포하기 위해 오늘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계신지요? 만약 당신의 이웃이 당신이 신앙의 길을 걷고 있음을 알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우리 오로라시에 한인 성당이 이렇게 멋지게 들어서 있고 벌써 40여년이 가까운데 나로 인하여 신앙을 살게 된 이웃은 얼마나 될런지요? 비즈니스를 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더 큰 기회를 갖고 있습니다. 당신의 가게에 천주교를 알려드립니다 하는 책자를 두실 수도 있고 가톨릭 신문이나 교회 잡지를 비치해 둘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당신을 향하여 혹 성당 다니냐고 묻게 될 것입니다. 당신과 교류관계를 맺고 다양한 취미활동을 함께 하는 이들도 있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대화 가운데 종종 나는 성당에 나가야 한다, 혹은 성당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하고 있다고 말할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이 혹시 신앙의 선포에 관하여 부담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당신의 믿음이 미약하여 당신을 선포의 길로 이끌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스스로 생각하며 더 큰 믿음과 성령을 따라 선포할 수 있는 담대함을 달라고 청할 수 있지는 않을런지요? 이사야 예언자의 입을 빌어 선포된 이 장대한 하느님 나라는 당신의 선포에 달려있음을 당신을 알고 계십니까?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을 당신은 마음에 새기고 계시는지요?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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