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과 묵상

Title오늘의 말씀과 묵상. 연중 제3주간 토요일(01/20/2021)2021-01-30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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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과 묵상. 연중 제3주간 토요일(01/20/2021)

 

<1독서>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11,1-2.8-19

 

형제 여러분, 1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

2 사실 옛사람들은 믿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8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장차 상속 재산으로 받을 곳을 향하여 떠나라는 부르심을 받고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떠난 것입니다.

9 믿음으로써, 그는 같은 약속의 공동 상속자인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천막을 치고 머무르면서, 약속받은 땅인데도 남의 땅인 것처럼 이방인으로 살았습니다.

10 하느님께서 설계자이시며 건축가로서 튼튼한 기초를 갖추어 주신 도성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1 믿음으로써, 사라는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여인인 데다 나이까지 지났는데도 임신할 능력을 얻었습니다. 약속해 주신 분을 성실하신 분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12 그리하여 한 사람에게서, 그것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사람에게서 하늘의 별처럼 수가 많고 바닷가의 모래처럼 셀 수 없는 후손이 태어났습니다.

13 이들은 모두 믿음 속에 죽어 갔습니다.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멀리서 그것을 보고 반겼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은 이 세상에서 이방인이며 나그네일 따름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14 그들은 이렇게 말함으로써 자기들이 본향을 찾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15 만일 그들이 떠나온 곳을 생각하고 있었다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16 그러나 실상 그들은 더 나은 곳, 바로 하늘 본향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하느님이라고 불리시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도성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17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이사악을 바쳤습니다.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이 외아들을 바치려고 하였습니다.

18 그 외아들을 두고 하느님께서는 일찍이, “이사악을 통하여 후손들이 너의 이름을 물려받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19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죽은 사람까지 일으키실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사악을 하나의 상징으로 돌려받은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35-41

 

35 그날 저녁이 되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 하고 말씀하셨다.

36 그래서 그들이 군중을 남겨 둔 채, 배에 타고 계신 예수님을 그대로 모시고 갔는데, 다른 배들도 그분을 뒤따랐다.

37 그때에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

38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39 그러자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

40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41 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서로 말하였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믿는다는 것이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경험하는 이 유한한 세계, 그리고 언제나 변화무쌍한 이 세상 속에서 과연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어제 단단했다 오늘은 아무것도 아닌 그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호수 건너편으로 가고 있는 이 세상 속에서 부족하고 연약한 우리가 간직하는 믿음은 무엇일까요?

 

예비신자교리 시간을 빌려 여러분께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이 세상에서 완전한 믿음을 볼 수는 있을까요?

믿음이라는 말은 오직 하느님께만 사용할 수 있는 말입니다.

사람이 믿을 만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하느님과 같아져야 되지요.

사람과 세상은 한계 지워져 있어 온전한 믿음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나도, 너도, 우리도 믿음의 대상은 아닙니다.

나도, 너도, 우리도 언젠가는 변하고 오늘은 심지가 굳건하지만 한없이 나약하고 변화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나도, 너도, 우리도 완전히 믿을만하지 않기에 더 많이 사랑해주어야 하고 더 깊이 사랑해주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부족한 믿음은 서로에게 생채기도 내고

무엇보다 자신의 영혼에도 아픔을 줍니다.

그것이 우리 믿음의 실재입니다.

 

우리는 믿음이 약한 사람.

우리는 완전한 믿음을 위해 걸어가는 사람.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 안에 있을 때 훨씬 더 안전하고 훨씬 더 평화로워집니다.

 

우리 배는 언제나 흔들리고

조그마한 바람에도 금새 의기소침해지며

서로의 불안한 믿음이 서로에게 더 큰 불안으로 다가오지만

그게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우리 믿음의 오늘일 뿐.

 

언젠가 우리도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믿음에서 희망이, 희망에서 사랑이 있음을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불완전함에서 늘 완전을 그리는 여러분에게,

여러분이나 저나 모두 흔들리는 배 위에서 우왕좌왕하는 삶이라

기쁨과 고통을 함께 주지만,

그래도 하느님과 함께 이 길을 걸어가길 다시 한번 초대합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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