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과 묵상. 연중 제25주간 화요일(09/26/2023) <제1독서> ▥ 에즈라기의 말씀입니다. 6, 7-8.12ㄴ.14-20 그 무렵 다리우스 임금은 유프라테스 서부 지방 관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다. 7 “하느님의 집 공사가 계속되게 하여라. 유다인들의 지방관과 유다인들의 원로들이 그 하느님의 집을 제자리에 다시 짓게 하여라. 8 이제 그 하느님의 집을 다시 짓도록 그대들이 유다인들의 원로들을 도와서 해야 할 일에 관하여, 내가 이렇게 명령을 내린다. 왕실 재산 곧 유프라테스 서부 지방에서 받는 조공에서, 지체하지 말고 그 사람들에게 어김없이 비용을 내어 주어라. 12 나 다리우스가 명령을 내리니 어김없이 시행하여라.” 14 유다의 원로들은 하까이 예언자와 이또의 아들 즈카르야가 선포하는 예언에 힘입어 건축 공사를 순조롭게 진행하였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의 명령과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와 다리우스와 아르타크세르크세스의 명령에 따라 건축 공사를 마칠 수 있었다. 15 그리하여 이 집이 완공된 것은 다리우스 임금의 통치 제육년 아다르 달 초사흗날이었다. 16 이스라엘 자손들, 곧 사제들과 레위인들과 돌아온 나머지 유배자들은 기뻐하며 하느님의 집 봉헌식을 올렸다. 17 이 하느님의 집 봉헌식에는 황소 백 마리와 숫양 이백 마리와 어린양 사백 마리를 바치고, 온 이스라엘을 위한 속죄 제물로 이스라엘의 지파 수에 따라 숫염소 열두 마리를 바쳤다. 18 그런 다음 모세의 책에 쓰인 대로, 사제들을 저마다 번별로 세우고 레위인들을 저마다 조별로 세워 예루살렘에서 하느님을 섬기도록 하였다. 19 돌아온 유배자들은 첫째 달 열나흗날에 파스카 축제를 지냈다. 20 사제들과 레위인들은 일제히 자신을 정결하게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정결하게 되었다. 그런 다음 그들은, 돌아온 모든 유배자와 동료 사제들과 자기들이 먹을 파스카 제물을 잡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 19-21 그때에 19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군중 때문에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20 그래서 누가 예수님께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을 뵈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알려 드렸다. 21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지난 주간 신부님들과의 만남에서 어느 한 신부님이 물어봅니다. “신부님, 우리 교회의 미래가 있습니까?” 갑작스런 질문이기도 하지만 오랜 고민의 흔적이 묻은 질문이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점점 그런 생각을 가져본 적이 있지만 아마 이곳 미국 교회안에서 살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그럼요. 교회의 미래가 있지요. 하느님이 계시고 그분이 희망이시니까요.” 쉬이 납득하는 눈치는 아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경험하기 전에는 잘 알아차리기 힘든 부분이니까요. 믿음이 있어야 열릴 것입니다. 신부님의 고뇌에 찬 질문에 “우리가 더 큰 믿음을 가지도록 애쓰자”고 함께 말했습니다. 적지 않는 교우들에게서 신앙이 전부가 아니라 일부로서 겨우 흔적만 남긴 모습을 발견하면 아마도 그런 질문이 자연스레 뒤따를 터입니다. 하느님이 더 이상 그들의 삶에서 중심이 아닐 때 그런 질문이 뒤따를 터입니다. 그러나 문득 내가 신앙의 중심을 잃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제나 하느님 안에서 미래를 꿈꿀 수 있다고 여기게 될 것이라는 마음을 깨닫습니다. 성전(흔히 성당이라 불리는)을 짓는 것도, 성경 공부를 하는 것도, 기도에 열중하고 미사에 나오는 것도 모두 자신의 삶에 믿음을 불어넣는 행위입니다. 믿음은 그냥 두면 점점 사그라지를 불꽃과도 같습니다. 계속 믿음의 원료를 넣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차라도 기름을 넣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차가 움직이지 않으면 어디로든 갈 수 없듯이 우리의 삶도 믿음의 땔감을 계속 충전해 주어야 합니다. 목적지를 알아도 갈 수 없는 우리가 아니길 바랍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 말씀이 우리 삶의 중심에 하느님을 더 많이 모시라는 재촉처럼 느껴집니다. 그 말씀이 우리가 더 행복해지기 위해 더 많이 하느님을 모시면 된다는 말씀처럼 여겨집니다. 하느님이 그 삶에 언제나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합니까? 사실 눈에 보이는 모습이 어떨지라도 우리 교회에 미래는 있습니다. 하느님을 만나는 사람은 끝까지 희망하고 하느님은 그 희망의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은총의 오늘이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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