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과 묵상

Title오늘의 말씀과 묵상. 성 마티아 사도 축일(05/14/2021)2021-05-14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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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과 묵상. 성 마티아 사도 축일(05/14/2021)

 

<1독서>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15-17.20-26

 

15 그 무렵 베드로가 형제들 한가운데에 서서 말하였다. 그 자리에는 백스무 명가량 되는 무리가 모여 있었다.

16 “형제 여러분, 예수님을 붙잡은 자들의 앞잡이가 된 유다에 관해서는, 성령께서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언하신 성경 말씀이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17 유다는 우리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우리와 함께 이 직무를 받았습니다.

20 사실 시편에 그의 처소가 황폐해지고 그 안에 사는 자 없게 하소서.’ 그의 직책을 다른 이가 넘겨받게 하소서.’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21 그러므로 주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지내시는 동안 줄곧 우리와 동행한 이들 가운데에서,

22 곧 요한이 세례를 주던 때부터 시작하여 예수님께서 우리를 떠나 승천하신 날까지 그렇게 한 이들 가운데에서 한 사람이 우리와 함께 예수님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23 그래서 그들은 바르사빠스라고도 하고 유스투스라는 별명도 지닌 요셉과 마티아 두 사람을 앞에 세우고, 24 이렇게 기도하였다.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님, 이 둘 가운데에서 주님께서 뽑으신 한 사람을 가리키시어,

25 유다가 제 갈 곳으로 가려고 내버린 이 직무, 곧 사도직의 자리를 넘겨받게 해 주십시오.”

26 그러고 나서 그들에게 제비를 뽑게 하니 마티아가 뽑혀, 그가 열한 사도와 함께 사도가 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9-1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10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11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12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13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14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15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16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17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유다의 자리를 대신하여 새로운 사도가 뽑힙니다.

오랫동안, 즉 주님의 복음 선포의 시간 그때부터 함께 한 이들 가운데 기도로서 새로운 사도가 뽑힌 것입니다.

이로써 열두 명만이 아니라 참으로 많은 이들이 예수님의 공생활 내내 동행하였음을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열두 명에 속하지 않은 제자들은 열두 사도의 자리가 부럽지는 않았을까?

인간적인 생각이 끼어들 자리는 없겠지만 그냥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당부 말씀이 떠오릅니다.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는 서로 사랑하여라.”

 

하기야 초기 교회 시대의 사도로서 세워진다는 것은 곧 무수한 박해를 받을 표적으로 세워진다는 것과 다름이 아니었습니다.

지금의 생각으로는 영예로운 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대에는 죽음의 첫 번째 자리에 세워진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사도가 된다는 것,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세상에 들어 올려진 표징과도 같은 삶입니다.

마치 상징처럼 그 존재 자체를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삶을 말합니다.

가장 첫 번째 공격 목표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드러나지 않는 신앙을 선호하는 이들이 신앙인들 가운데 적지 않습니다.

그것이 애잔함이고 성령 안에 살지 못하는 삶이고 마침내는 기쁨도 없는 삶이건만,

수고가 없이 어찌 보람이 있고 드러나지 않고 어찌 열매 맺을 수 있을까요?

 

그 옛날 새로운 사도를 뽑아 세우시던 그 날처럼, 그리하여 오소서, 성령이여입니다.

그 옛날 사도들에게 오시어 그 존재 자체를 세상에 드러내도록 이끄신, “오소서, 성령이여입니다.

세상의 것으로 걱정 가득하지 않고 그것조차도 훌쩍 뛰어넘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오소서, 성령이여입니다.

 

성령이 오셔야 우리의 사랑이 힘을 얻고

성령이 오셔야 우리의 희망이 더욱 힘차게 뛰며

성령이 오셔야 우리의 인내는 더욱 굳건해 질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영예의 자리나 일신의 평안이 아닌 세상의 변화를 위해 살아가는 이 땅의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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