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과 묵상

Title오늘의 말씀과 묵상.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06/04/2023)2023-06-04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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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과 묵상.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06/04/2023)

 

<1독서> 탈출기의 말씀입니다. 34, 4ㄱㄷ-6.8-9

 

그 무렵 4 모세는 주님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대로 아침 일찍 일어나 돌판 두 개를 손에 들고 시나이 산으로 올라갔다.

5 그때 주님께서 구름에 싸여 내려오셔서 모세와 함께 그곳에 서시어, ‘야훼라는 이름을 선포하셨다.

6 주님께서는 모세 앞을 지나가며 선포하셨다. “주님은, 주님은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다. 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다.”

8 모세는 얼른 땅에 무릎을 꿇어 경배하며 9 아뢰었다.

주님, 제가 정녕 당신 눈에 든다면, 주님께서 저희와 함께 가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백성이 목이 뻣뻣하기는 하지만, 저희 죄악과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저희를 당신 소유로 삼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2독서>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 13, 11-13

 

11 형제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자신을 바로잡으십시오. 서로 격려하십시오. 서로 뜻을 같이하고 평화롭게 사십시오. 그러면 사랑과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12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십시오. 모든 성도가 여러분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기를 빕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 16-18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날씨가 참 희한합니다. 한국의 장마철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렇게 자주 오랫동안 비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참 예사롭지 않습니다. 원래의 날씨가 그런 것인지 아니면 세간에서 말하듯 지구 온난화 때문인지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잔디밭의 물을 아직 한 번도 주지 않았는데도 잔디나 풀이 엄청나게 잘 자라는 것을 보니 그런 생각이 문득 듭니다.

어떤 상황의 변화에도 좋은 점과 그렇지 않은 점이 함께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잘 적응해서 아프지 않기를 기도드립니다.

 

사람은 혼자 살지 않기에 하느님은 말합니다. 원래 인간은 홀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다른 이와 관계를 맺고 살기에, 사람은 서로 자신을 표현하거나 드러내는 방법을 취합니다.

그 가운데 언어적 의사소통이 있고 비언어적 의사소통이 있습니다.

언어적 의사소통은 전체 의사소통 가운데 약 절반에 못 미치는 정도입니다.

소위 말하기입니다.

그렇게 보면 말로 표현하는 것은 절반밖에 안 된다는 뜻이겠습니다.

절반 넘어서는 비언어적 의사소통 방법이 있는데, 표정, 용모, 복장, 자세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말을 잘하면 그 뜻이 잘 전달된다 생각하지만 말보다 느낌, 혹은 말을 담아낼때의 표정이나 몸짓을 더 오래 기억하고 그를 통해 말을 전달한다고 말하는 것이 더 옳다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사랑의 말도 우린 너무나 부족하게 합니다 사랑을 표현하는 것을 더 풍요롭게 하려면 사랑에 따른 나의 몸짓언어가 따라야 한다는 뜻이겠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수천 년 동안 하느님에 관한 유일 신앙을 갖고 살아왔습니다.

즉 절대적으로 하느님은 한 분이시고 다른 신은 없습니다.

하느님이라는 분의 자리에 누구도 놓을 수 없다고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하느님만이 주님이신 것입니다.

 

그런데 초기 그리스도교인들, 즉 예수님이 주님이시라고 신앙고백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하느님과 예수님, 그리고 나아가 예수님께서 보내신 성령이 같은 주님이시라고 고백하는 이들이 생겨났습니다.

그것이 바로 삼위일체라는 신학의 교리입니다.

 

사실 이 신비는 비로소 체험으로 알 수 있을 뿐입니다.

교리가 되기 전에 이미 삶입니다.

마치 사랑한다고 말하기 전에 이미 사랑을 아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니 사랑이라는 말과 사랑의 표현이 뒤따라와 서로를 완전히 채워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느님을 온전히 알아차리면 이 신비는 말로 따져 헤아려 알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바로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리고 삼위일체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내적 신비입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세상과 더불어 자신을 드러내신 성부 하느님이시고 세상을 구원하시고 영영원한 삶의 길로 인도하시는 성자 하느님이시고 그리고도 부족하여 세상 속에서 여전히 우리를 향한 놀라운 사랑의 위업으로 활동하시는 성령 하느님이십니다.

이를 말로 풀어내자니 삼위일체 하느님이십니다.

 

어렵지만 하나도 어렵지 않고 오히려 성부 성자 성령 하느님을 체험하는 이에게는 감사한 일입니다.

하느님이 이토록 돌보시나이까? 하신 그 사랑의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 삼위일체 대축일의 하느님은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시는지 당신을 드러내시는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이라는 존재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알아차리는 것이 오늘 우리가 이토록 거룩한 전례 속에 하느님을 기억하는 방식일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이토록 사랑받고 있음에 감사드리고

그 사랑에 힘입고 그 사랑을 세상 속의 나의 관계 안에서 확산시키는 것이

내가 삼위일체의 신비를 살아가는 이유일 것입니다.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이 지극히 거룩한 삼위일체의 신비앞에 꿇어 엎드려 감사드림은 바로 이 때문일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이 놀라운 하느님 사랑에 함께 감사드리며 오늘을 기쁘게 살아갑시다.

온통 사랑의 마음으로, 사랑의 언어로 나의 삶을 채워갑시다.

그렇게 내 삶이 하느님의 사랑을 담아낼 때 나는 하느님 삼위일체의 이 거룩한 신비를 살아가는 오늘의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고 비로소 하느님이 누구신지 올바로 알게 되는 오늘이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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