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과 묵상.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07/29/2023) <제1독서>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4, 7-16 7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9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10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11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2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13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로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압니다. 14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합니다. 15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머무릅니다. 16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 19-27 그때에 19 많은 유다인이 마르타와 마리아를 그 오빠 일 때문에 위로하러 와 있었다. 20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고, 마리아는 그냥 집에 앉아 있었다. 21 마르타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22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23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니, 24 마르타가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였다.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26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27 마르타가 대답하였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참 많이 말하는 이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정의하는 것이 어렵긴 합니다. 다만 사랑이란 것의 느낌에 대해서는 우리가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오늘날 뇌과학 연구에서 밝혀진 것처럼 사랑이라는 것을 느낄 때 우리의 뇌 속에서 일어나는 활발한 작용들이 있습니다. 그중에 쾌락 중추라고 일컬어지는 부분이 있는데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낄 때 이 부분이 활성화된다고 하네요. 이 부분은 동기부여와 보상, 그리고 쾌락(즐거움)에 관여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좀 어렵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낄 때 인간은 기쁨을 맛본다’라고 말하면 좋겠습니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데에도 기술이 필요합니다. 이 기술적 부분이 엄청 힘든 일이라 그것을 대체할 것들을 사람들은 찾습니다. 소위 ‘마약’이라는 것이 그런 사랑이 주는 만족감과 행복감을 일시적이나마 갖게 해 줍니다. 그러니 사랑의 결핍과 사랑의 힘겨움이 특정 약물을 통해 손쉽게 해소될 수 있다고 여겨져 반복적인 중독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겠습니다. 누구나 말합니다. 쉽게 얻으면 그 가치를 오래 누리기 어렵다고. 어렵게 얻으면 오랫동안 그 가치가 머물고 발현됩니다. 그 어려운 사랑의 길이 하느님에게 있습니다. 예수님의 삶의 모든 순간이 합쳐진 십자가에 하느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그 사랑이 사람을 살게 합니다. 공부라는 것이 바로 이 사랑을 배우는 일임을 뒤늦게서야 깨닫습니다. 공부하기 참 싫고 예습, 복습도 싫습니다. 순간순간 즐기고 맛볼 수 있는 쾌락의 도구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러니 어려움은 뒤로 돌리고 손쉬운 것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싶은 유혹이 얼마나 많은지요? 사랑은 슬픔도 한가득, 괴로움도 한가득, 그리고 기쁨도 한가득입니다. 사랑이란 이름 안에 맛보게 되는 그 행복감이란 인간사에서 느끼는 모든 감정의 복합체임을 압니다. 어쩌다 보니 오늘 묵상이 좀 어려워진 것은 사랑이란 것이 그리 어렵기 때문일 터입니다. 그 어려운 사랑의 길이 아니라면 인간의 온전한 구원이란 이루어지지 않겠지요? 부디 하느님 안에서 온전한 사랑을 맛보고 그 사랑이 우리의 사랑에 빛과 힘과 용기 되길 청해봅니다.
어렵지만 열심히 이 길을 가는 우리 자신을 위하여 힘을 내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