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과 묵상. 연중 제8주간 화요일(05/30/2023) <제1독서> ▥ 집회서의 말씀입니다. 35, 1-15 1 율법을 지키는 것이 제물을 많이 바치는 것이고 2 계명에 충실한 것이 구원의 제사를 바치는 것이다. 3 은혜를 갚는 것이 고운 곡식 제물을 바치는 것이고 4 자선을 베푸는 것이 찬미의 제사를 바치는 것이다. 5 악을 멀리하는 것이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고 불의를 멀리하는 것이 속죄하는 것이다. 6 주님 앞에 빈손으로 나타나지 마라. 7 사실 이 모든 것은 계명에 따른 것이다. 8 의로운 이의 제물은 제단을 기름지게 하고 그 향기가 지극히 높으신 분께 올라간다. 9 의로운 사람의 제사는 받아들여지고 그 기억은 잊히지 않으리라. 10 기꺼운 마음으로 주님께 영광을 드리고 네 손의 첫 열매를 바치는 데에 인색하지 마라. 11 제물을 바칠 때는 언제나 즐거운 얼굴을 하고 십일조를 기쁘게 봉헌하여라. 12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네게 주신 대로 바치고 기꺼운 마음으로 능력껏 바쳐라. 13 주님께서는 갚아 주시는 분이시기에 일곱 배로 너에게 갚아 주시리라. 14 그분에게 뇌물을 바치지 마라. 받아 주지 않으신다. 15 불의한 제사에 기대를 갖지 마라. 주님께서는 심판자이시고 차별 대우를 하지 않으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 28-31 28 그때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29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30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31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어제는 공항을 두 번이나 다녀왔습니다. 한국에서 오신 두 분 신부님과 또 타 주에서 사목 중이신 신부님을 모시기 위해서입니다. 좀 피곤하지 않다면 거짓말일 텐데 그래도 기쁜 마음으로 하려고 엄청 노력합니다. 이왕 오실 분 좋은 마음으로 맞이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것뿐입니다. 그래서 평소보다 훨씬 늦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좋기도 감사하기도 피곤하기도 합니다. 좋은 일에 수고가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 싶기도 합니다. 문득 드는 어떤 생각이 있습니다. 내가 엄청 좋은 사람 아닌데 어찌 이리 손님 신부님들이 많이 오시나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고마운 일이라 생각할 뿐입니다. 언젠가 받게 될 미래의 보상을 생각하는 것이 좀 유치한 것 아니냐 하는 생각들이 있습니다. 고상하지 않다는 것 같은데…. 사실 우리가 자녀를 키울 때 자녀로부터 받게 될 무엇을 기대하는 것은 아닐 터입니다. 다만 사랑으로 돌보는 것일 텐데. 그래도 자녀가 부모의 사랑을 알아주면 참 감사한 일이지 않습니까? 오늘을 착하게 산다. 그러면 복을 받을 것이다. 이 가르침이 왜 유치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오늘을 성심껏 살아갈 때 하늘의 복을 기대하는 것이 오히려 더 솔직하지 않을까요? 내가 잘하면 나도, 내가 아니면 나의 자녀들이 복을 받지 않겠습니까? 하느님이 꼭 계셔서 좋은 일에는 꼭 상을 주시고 나쁜 일에는 벌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좀 덜 억울할 것 같습니다. 너무 세속적이고 인간적인 생각 아니냐고 하실 분도 계시겠습니다. 완전히 이타적인 이유로만 살아가는 분도 계실 터이고 그런 분께는 이런 말씀이 좀 저어되겠지만, 뭘 계산해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지만, 그 결과로서 갚음이 있다면 좋겠다 싶기도 합니다. 그래야 더 분명하게 더 열심히 살아갈 이유가 되지 않을까요? 안 그러면 좀 억울하게 느끼실 분도 계실 터인데. 베드로 사도는 당당히 여쭈어봅니다. 모든 것을 버렸다고 말입니다. 그러니 무엇을 되받겠습니까? 아마도 세속적인 명리나 이유를 말하는 것이었을까요? 아닙니다. 베드로 사도의 입을 통해 그리스도인이란 하느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사람이라는 가르침이 그 안에 담겨 있을 뿐입니다. 또 하느님은 그것을 잊지 않으시고 더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시는 분이라는 가르침을 우리에게 줄 뿐입니다. 다만 다 바치지 못하고 그저 적당히 걸쳐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셈을 논한다니 우습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러한 유치하기까지 한 인간적인 우리의 삶에도 하느님은 더 좋게 베풀어주십사 기도드려봅니다. 내가 바치는 정성보다 더 큰 것을 바람이 왜 부끄러움이 아니겠습니까만, 그래도 그것이 기도의 이유이자 선행의 이유, 희생의 이유가 될 수 있다면 하고 이 아침에 마음먹습니다.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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