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의 묵상. 주님 봉헌 축일(축성 생활의 날 02/02/2022) <제1독서> ▥ 말라키 3, 1-4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너희가 좋아하는 계약의 사자 보라, 그가 온다.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2 그가 오는 날을 누가 견디어 내며 그가 나타날 때에 누가 버티고 서 있을 수 있겠느냐? 그는 제련사의 불 같고 염색공의 잿물 같으리라. 3 그는 은 제련사와 정련사처럼 앉아 레위의 자손들을 깨끗하게 하고 그들을 금과 은처럼 정련하여 주님에게 의로운 제물을 바치게 하리라. 4 그러면 유다와 예루살렘의 제물이 옛날처럼, 지난날처럼 주님 마음에 들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루카 2, 22-40 2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23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24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25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26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27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28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29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30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31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32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35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36 한나라는 예언자도 있었는데, 프누엘의 딸로서 아세르 지파 출신이었다. 나이가 매우 많은 이 여자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 37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38 그런데 이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39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그들은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40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온 세상이 하얀 눈이 뎦혔습니다. 어제 해질 무렵부터 내린 눈이 제법 쌓였습니다. 눈 길을 오가야 하는 모든 분의 안전을 기도드립니다. 요즘 들어 눈 치울 일이 적지 않습니다. 그저 마음이 분주한 것이지 천천히 하면 못할 것이 없습니다. 어쨌든 오늘 부디 안전하게 다니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오늘은 주님 봉헌 축일입니다. 복음 말씀대로 모든 이스라엘인은 어릴 때 이렇게 자신의 삶을 하느님께 봉헌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야 할지, 자신의 삶의 이유는 무엇인지를 마음에 새깁니다. 봉헌은 그런 의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 또한 그러합니다. 우리의 삶은 하느님에게서 와서 하느님에게로 갑니다. 그리고 우리 삶의 이유는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임을 다시금 마음에 새깁니다. 그래서 교회는 오늘 모든 봉헌생활자(축성생활자)의 날을 지냅니다. 오직 주님의 것인 이들이 자신의 삶을 주님 안에서 새롭게 하는 날입니다. 축하하면서도 기도로 함께 해 주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겠지요. 저는 아기를 율법에 따라 봉헌하는 부모님의 정성과 신앙을 봅니다. 세례성사 또한 그러합니다. 저 역시 아직 어릴 때 부모님께서 하느님의 성전에서 세례를 받게 하셨습니다. 교회는 아기의 신앙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어버이의 신앙을 봅니다. 어쨌든 하느님께 봉헌하는 아기이지만, 자녀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일터입니다. 그런 마음을 새깁니다. 봉헌은 맡겨드리는 행위로서 작용합니다. 하느님, 돌보아 주시고 살펴주십시오. 그런 마음입니다. 봉헌을 하면서 기도를 바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부탁을 올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느님, 당신께 드리오니 당신이 잘 살펴주시고 돌보아주소서. 하는 마음입니다. 무에 큰 신앙의 결단이 아니라 그저 그런 요청입니다. 우리의 신앙 삶이 여기에서 크게 더 나아가지 못하는 일생을 살기 마련입니다. 다만, 하느님께 의탁하였으니 하느님께서 잘 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이라도 꼭 끝까지 간직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내 마음에 드는 자녀가 아니라 하느님 마음에 드는 자녀 되길 소망하면 좋겠습니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사는 자녀가 아니라 하느님이 원하시는 삶을 사는 자녀 되길 소망하면 좋겠습니다. 그게 봉헌입니다. 날이 궂어서 그렇겠습니다만, 저녁 미사에는 초를 축성하는 예절을 갖습니다. 봉헌의 삶이란 이렇게 세상에 따뜻함 한 자락, 밝음 하나를 더 하는 것임을 새기는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이날을 이런 마음으로 살면 좋겠습니다. 오늘이 평안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우리의 삶이 그토록 거대한 그 무슨 의미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 것만 같은 삶이 되면 좋겠습니다. 나중에 하느님 보시니 참 좋았다 하실 거라 믿습니다. 저는 눈을 좀 치워야 겠습니다. 보기에는 좋지만 그래도 사람 다닐 길을 내어야 하겠지요? 주님의 평화를 진심으로 기도드리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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