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과 묵상

Title오늘의 말씀과 묵상. 연중 제25주간 금요일(09/24/2021)2021-09-24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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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과 묵상. 연중 제25주간 금요일(09/24/2021)

 

<1독서> 하까이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1,152,9

 

15 다리우스 임금 제이년이었다.

2,1 그해 일곱째 달 스무하룻날에 주님의 말씀이 하까이 예언자를 통하여 내렸다.

2 “너는 스알티엘의 아들 즈루빠벨 유다 총독과 여호차닥의 아들 예수아 대사제와 나머지 백성에게 말하여라.

3 ‘너희 가운데 이 집의 옛 영화를 본 사람들이 남아 있지 않느냐? 지금은 이 집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너희 눈에도 있으나마나 하지 않느냐?

4 그러나 즈루빠벨아, 이제 용기를 내어라. 주님의 말씀이다. 여호차닥의 아들 예수아 대사제야, 용기를 내어라. 이 땅의 모든 백성아, 용기를 내어라.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으니 일을 하여라. 만군의 주님의 말씀이다.

5 너희가 이집트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맺은 언약대로 나의 영이 너희 가운데에 머무를 터이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마라.

6 정녕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머지않아 나는 다시 하늘과 땅, 바다와 뭍을 뒤흔들리라.

7 내가 모든 민족들을 뒤흔들리니 모든 민족들의 보화가 이리 들어오리라. 그리하여 내가 이 집을 영광으로 가득 채우리라.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8 은도 나의 것, 금도 나의 것이다. 만군의 주님의 말씀이다.

9 이 집의 새 영광이 이전의 영광보다 더 크리라.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이곳에 평화를 주리라. 만군의 주님의 말씀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18-22

 

18 예수님께서 혼자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도 함께 있었는데, 그분께서 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9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나셨다고 합니다.”

20 예수님께서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시자, 베드로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1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하게 분부하셨다.

22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하고 이르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은 왜 제자들에게 당신에 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하게 분부하셨을까요?

복음서의 또 다른 어느 장에선가, 제자들이 곧 오실 하느님의 영광의 날에 예수님 옆에 누가 앉을 것인가를 두고 서로 다툰 듯한 내용이 나오는 것을 보면

예수님에 대한 오해는 이제나 그때나 여전한 듯 보입니다.

 

우리는 성당에 다니면서 혹여 오해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오해라는 단어의 뜻 풀이는 그릇되게 해석하거나 뜻을 잘못 앎. 또는 그런 해석이나 이해를 말합니다.

누군가를 오해할 때도 많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 사람의 본의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운데 생겨나는 관계의 많은 어려움은 때때로 오해에 기반합니다.

잘못 이해한 것이죠.

왜 잘못 이해할까요?

그 사람이 보여주는 외적인 표현의 방식이나 내용이 진짜인 것만 같아서 그럴 수도 있고.

혹은 우리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하느님에 대한 오해도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참 길지만,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이 세상 안에 온전히 펼쳐 주심으로써 오해할 수 있는 많은 부분들을 해소시켜 주었습니다.

예수님, 즉 하느님께서 당신의 본심을, 혹은 본의를 완전히 보여주신 것이죠.

이쯤이면 오해가 풀릴 법도 한데, 여전히 오해가 많은 이유는 이제 내게 혹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내가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그래서 온전히 이해하기 전까지 말하기 보다 침묵하며 오롯이 곱씹어 보는 행위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에 대해 판단해야 할때도 마지막까지 판단하지 말고 끝까지 유보하는 행위가 필요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저 사람이 그럴 줄 몰랐다. 저 사람이 내게 보여준 그간의 모든 행위는 다 가식적이고 나를 기만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말을 들을 때가 많습니다.

과연 그러합니까?

혹여 내가 오해한 것은 아닐까요?

그런 말조차 침묵하며 다시금 살펴보면 어떨까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당신이 누구이신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히부탁하십니다.

오해하지 말고 혹여 섣부르게 판단하지 말고.

그런 말씀은 아닌지 살펴봅니다.

 

오해없는 하루, 평안함의 하루가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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