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과 묵상.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성서 주간 11/26/2023) <제1독서>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4,11-12.15-17 11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내 양 떼를 찾아서 보살펴 주겠다. 12 자기 가축이 흩어진 양 떼 가운데에 있을 때, 목자가 그 가축을 보살피듯, 나도 내 양 떼를 보살피겠다. 캄캄한 구름의 날에, 흩어진 그 모든 곳에서 내 양 떼를 구해 내겠다. 15 내가 몸소 내 양 떼를 먹이고, 내가 몸소 그들을 누워 쉬게 하겠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16 잃어버린 양은 찾아내고 흩어진 양은 도로 데려오며, 부러진 양은 싸매 주고 아픈 것은 원기를 북돋아 주겠다. 그러나 기름지고 힘센 양은 없애 버리겠다. 나는 이렇게 공정으로 양 떼를 먹이겠다. 17 너희 나의 양 떼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양과 양 사이, 숫양과 숫염소 사이의 시비를 가리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5,20-26.28 형제 여러분, 20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죽은 이들의 맏물이 되셨습니다. 21 죽음이 한 사람을 통하여 왔으므로 부활도 한 사람을 통하여 온 것입니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날 것입니다. 23 그러나 각각 차례가 있습니다. 맏물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분께 속한 이들입니다. 24 그러고는 종말입니다. 그때에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권세와 모든 권력과 권능을 파멸시키시고 나서 나라를 하느님 아버지께 넘겨 드리실 것입니다. 25 하느님께서 모든 원수를 그리스도의 발아래 잡아다 놓으실 때까지는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셔야 합니다. 26 마지막으로 파멸되어야 하는 원수는 죽음입니다. 28 그러나 아드님께서도 모든 것이 당신께 굴복할 때에는, 당신께 모든 것을 굴복시켜 주신 분께 굴복하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실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5,31-4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1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이다. 32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 33 그렇게 하여 양들은 자기 오른쪽에, 염소들은 왼쪽에 세울 것이다. 34 그때에 임금이 자기 오른쪽에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35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36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37 그러면 그 의인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38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39 언제 주님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 40 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41 그때에 임금은 왼쪽에 있는 자들에게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42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43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이지 않았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있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 44 그러면 그들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시거나 목마르시거나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또 헐벗으시거나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시중들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45 그때에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46 이렇게 하여 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기 오늘 예수님은 분명코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발견이라는 말이 의미심장합니다. 그것은 이미 존재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것을 찾아내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그리스도는 여전히 우리와 함께 머물지만 그를 발견하는 것, 그래서 그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의 소명입니다. 그럼 그리스도는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요? 아니 어디에 존재하나요? 교회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주간을 시작하는 우리에게 교회는 그렇게 묻는 것만 같습니다. 이런 표현이 정확할지 모르지만, 마치 그리스도를 발견한 사람과 그리스도를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 그래서 그리스도를 가진 사람,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 그래서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기입니다. 무엇보다 이 일의 첫 단계는 ‘열망을 가지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이 첫 단계에서부터 미끄러져 있습니다.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겠다는 열망을 가지지 않고 살아가는 일이 참 흔합니다. 우리는 적당한 전례에 갇혀 있습니다. 우리는 적당한 기도에, 적당한 봉사에 갇혀 있습니다. 더 나아가겠다는 참된 열망이 묻혀 있습니다. 마치 밭에 묻혀 있는 보물처럼. 목표가 없는데 나아가겠습니까? 목표가 없는데 집중하겠습니까? 노력이 있기나 하겠습니까? 열망이 시작입니다. 열망이 바로 확고한 목표입니다. 나는 나의 생을 통해 그리스도를 발견하고야 말겠다는 것이 바로 열망입니다. 그런 목표를 지닌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를 발견하고자 하는 방법을 찾게 됩니다. 자녀들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고 누구나 가르칩니다. 왜 그렇게 가르칩니까?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삶을 이루는데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 때문입니다. 인식이 있어야 열망이 생기고 열망이 있어야 방법과 의지가 수반되며 마침내 행동이 변화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번 주간을 시작하며 누구나 자신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고자 하는 열망이 넘치시기를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그것이 참으로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도움이 되는 한 권의 책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바로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기』(이냐시오식 12주 일상 피정), 요셉 A. 테틀로우 SJ,캐럴 애트웰 애클스|이냐시오영성연구소|, 2021-12-08입니다. 적당히가 아닙니다. 열심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