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과 묵상.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08/29/2020) 제1독서 <내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1,17-19 그 무렵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17 “너는 허리를 동여매고 일어나, 내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 그랬다가는 내가 너를 그들 앞에서 떨게 할 것이다. 18 오늘 내가 너를 요새 성읍으로, 쇠기둥과 청동 벽으로 만들어 온 땅에 맞서게 하고, 유다의 임금들과 대신들과 사제들과 나라 백성에게 맞서게 하겠다. 19 그들이 너와 맞서 싸우겠지만 너를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를 구하려고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7-29 그때에 17 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붙잡아 감옥에 묶어 둔 일이 있었다. 그의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 때문이었는데, 헤로데가 이 여자와 혼인하였던 것이다. 18 그래서 요한은 헤로데에게,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다. 19 헤로디아는 요한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20 헤로데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들을 때에 몹시 당황해하면서도 기꺼이 듣곤 하였기 때문이다. 21 그런데 좋은 기회가 왔다. 헤로데가 자기 생일에 고관들과 무관들과 갈릴래아의 유지들을 청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22 그 자리에 헤로디아의 딸이 들어가 춤을 추어, 헤로데와 그의 손님들을 즐겁게 하였다. 그래서 임금은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나에게 청하여라. 너에게 주겠다.” 하고 말할 뿐만 아니라, 23 “네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내 왕국의 절반이라도 너에게 주겠다.” 하고 굳게 맹세까지 하였다. 24 소녀가 나가서 자기 어머니에게 “무엇을 청할까요?” 하자, 그 여자는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여라.” 하고 일렀다. 25 소녀는 곧 서둘러 임금에게 가서,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청하였다. 26 임금은 몹시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라 그의 청을 물리치고 싶지 않았다. 27 그래서 임금은 곧 경비병을 보내며,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였다. 경비병이 물러가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28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주었다. 29 그 뒤에 요한의 제자들이 소문을 듣고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무덤에 모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기억한다는 것은” 오늘은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입니다. 초기 교회 공동체는 예수님에 앞선 온 시대의 마지막 예언자인 성 요한 세례자에 대한 특별한 기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이라는 그 중요한 하느님의 말씀 안에도 여러 차례 예수님의 입을 통해서든 요한 세례자에 대한 언급이 있었던 것이지요. 오늘의 그의 죽음을 기리는 날입니다. 그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누군가에 의해 끊임없이 기억되어야만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기억은 누군가를 비로소 존재케 하는 그 무엇입니다.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이 나에게서 그 누군가를 존재하게 하는 것임을 압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는 사건도 있고 잊혀져 버렸으면 하는 기억들도 있습니다. 괴로운 일 중 하나는 기억하고 싶은 것은 잘 기억나지 않고, 잊혀졌으면 하는 것들은 기억나는 것이지요. 그래서 때로는 망각도 은총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나는 좋은 기억이기를 바랍니다. 나의 행함이나 말함이 누군가에게 잊혀지지 않는 그 무엇이기를 바랍니다. 나는 하느님께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기를 바랍니다. 너와 내가 서로에게 아픔이었지만 사랑이었기를 바랍니다. 아마도 욕심대로 되지는 않겠지만, 살아가면서 적어도 그 정도의 욕심은 가져야 되지 않을까 싶은 오늘입니다. 성 요한 세례자의 죽음을 기억하며 우리가 그 고통을 기억하고자 하는 것은 때로는 우리의 삶도 그처럼 허망하거나 무의미해보이는 그 순간에도 결코 잊혀지지 않는 기억임을 다시금 되새겨 보고 삶의 허무를 지나는 날들에도 하느님의 계획을 알아차리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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