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과 묵상

Title오늘의 말씀과 묵상. 연중 제22주간 수요일(09/02/2020)2020-09-02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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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과 묵상. 연중 제22주간 수요일(09/02/2020)

 

1독서

<우리는 하느님의 협력자고, 여러분은 하느님의 밭이며 하느님의 건물입니다.>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3,1-9

1 형제 여러분, 여러분에게 이야기할 때, 나는 여러분을 영적이 아니라 육적인 사람, 곧 그리스도 안에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으로 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 나는 여러분에게 젖만 먹였을 뿐 단단한 음식은 먹이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지금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3 여러분은 아직도 육적인 사람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서 시기와 싸움이 일고 있는데, 여러분을 육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인간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4 어떤 이는 나는 바오로 편이다.” 하고 어떤 이는 나는 아폴로 편이다.” 하고 있으니, 여러분을 속된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5 도대체 아폴로가 무엇입니까? 바오로가 무엇입니까? 아폴로와 나는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정해 주신 대로, 여러분을 믿음으로 이끈 일꾼일 따름입니다.

6 나는 심고 아폴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7 그러니 심는 이나 물을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자라게 하시는 하느님만이 중요합니다.

8 심는 이나 물을 주는 이나 같은 일을 하여, 저마다 수고한 만큼 자기 삯을 받을 뿐입니다.

9 우리는 하느님의 협력자고, 여러분은 하느님의 밭이며 하느님의 건물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나는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38-44

38 예수님께서는 회당을 떠나 시몬의 집으로 가셨다.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심한 열에 시달리고 있어서, 사람들이 그를 위해 예수님께 청하였다.

39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가까이 가시어 열을 꾸짖으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즉시 일어나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40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갖가지 질병을 앓는 이들을 있는 대로 모두 예수님께 데리고 왔다.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들을 고쳐 주셨다.

41 마귀들도 많은 사람에게서 나가며,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꾸짖으시며 그들이 말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당신이 그리스도임을 그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42 날이 새자 예수님께서는 밖으로 나가시어 외딴곳으로 가셨다. 군중은 예수님을 찾아다니다가 그분께서 계시는 곳까지 가서, 자기들을 떠나지 말아 주십사고 붙들었다.

4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44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여러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바오로 편, 아폴로 편?”

 

지금도 그런 면이 없지는 않겠지만 처음 사도 바오로가 복음을 전하던 시기, 지금으로부터 거의 2000여년 전 초기 교회 공동체는 새로 생겨난 지 얼마되지 않아 오히려 복음전파자들의 영향력이 거의 절대적이었습니다. 지금도 각 개별 교회(우리가 흔히 기독교라 칭하는)의 목사들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잘 살펴본다면 이를 알 수 있겠지요.

 

이민사회인 우리 교회 공동체도 그러할 거라고 생각됩니다. 오랫동안 한 성당에서 사목을 하는 형태가 아니라 몇 년 정도의 임기를 거치면서 자주 사목자가 바뀌는 상황에서 우리 각자가 다르듯 각자에게 더 알맞은 사목자가 있기도 하고 어떤 분과는 도무지 잘 맞지 않는 사목자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사제들은 사목자라 불리지만 실제로는 하느님이 사목자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양떼입니다. 우리는 바오로의 양떼나 아폴로의 양떼가 아닙니다. 오직 주님만이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굳이 비교해보자면 사제들이란 주님 손에 들린 막대기나 양치는데 도움을 주는 양치기 개 정도가 되겠지요.

 

우스개 소리로 제가 강단에 서서 나는 민주당이나 공화당이 아니라 천주당원이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실제로도 그러합니다.

 

좀 더 맞고 좀 덜 맞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사도 바오로의 모범이 좋은 분도 계시고 왠지 아폴로의 모범에 끌리는 분도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분열도 아니고 파벌도 아닙니다. 좀 더 그리워하고 좀 더 정이 가는 것, 그것을 어찌하겠습니까?

 

우리는 오직 하느님 편입니다.

모든 것은 다 스러져갑니다.

우리 본당에서 사목했던 신부님 중에 이 세상을 떠나 영원한 본향으로 돌아가신 분도 계시고 어떤 분은 주교님이 되기도 하셨고 뭐 그럴 뿐이죠.

 

저도 있다 없어질 존재입니다. 여러분도 그러시죠. 있다 없어져 하느님 나라에서 만나겠지만 그날까지 소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자신의 자리에서 주님의 양치기 개로, 주님 손에 들린 막대기로 최선을 다해 살아갈 뿐입니다.

 

변치 않을 분~ ~로 천주 뿐이시다.”

 

누군가 누구를 그리워하는 것이 죄가 아니듯, 누군가 누가 더 마음에 드는 것도 죄가 아니랍니다. 누군가 누가 덜 마음에 드는 것 또한 죄가 아닙니다.

 

우리의 시선이 영원하신 하느님을 향하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여러분의 깊은 기도를 청하며 여러분을 위한 깊은 기도를 받아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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