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과 묵상

Title오늘의 말씀과 묵상.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 기념일(11/17/2020) 2020-11-17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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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과 묵상.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 기념일(11/17/2020)

 

1독서

<누구든지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을 것이다.>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3,1-6.14-22

나 요한은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1 “사르디스 교회의 천사에게 써 보내라. ‘하느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말한다. 나는 네가 한 일을 안다. 너는 살아 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죽은 것이다.

2 깨어 있어라. 아직 남아 있지만 죽어 가는 것들을 튼튼하게 만들어라. 나는 네가 한 일들이 나의 하느님 앞에서 완전하다고 보지 않는다.

3 그러므로 네가 가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들었는지 되새겨, 그것을 지키고 또 회개하여라. 네가 깨어나지 않으면 내가 도둑처럼 가겠다. 너는 내가 어느 때에 너에게 갈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4 그러나 사르디스에는 자기 옷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이 몇 있다. 그들은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닐 것이다. 그럴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5 승리하는 사람은 이처럼 흰옷을 입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생명의 책에서 그의 이름을 지우지 않을 것이고, 내 아버지와 그분의 천사들 앞에서 그의 이름을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6 귀 있는 사람은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14 라오디케이아 교회의 천사에게 써 보내라. ‘아멘 그 자체이고 성실하고 참된 증인이며 하느님 창조의 근원인 이가 말한다.

15 나는 네가 한 일을 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으련만!

16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

17 나는 부자로서 풍족하여 모자람이 없다.하고 네가 말하지만, 사실은 비참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것을 깨닫지 못한다.

18 내가 너에게 권한다. 나에게서 불로 정련된 금을 사서 부자가 되고, 흰옷을 사 입어 너의 수치스러운 알몸이 드러나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제대로 볼 수 있게 하여라.

19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나는 책망도 하고 징계도 한다. 그러므로 열성을 다하고 회개하여라.

20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21 승리하는 사람은, 내가 승리한 뒤에 내 아버지의 어좌에 그분과 함께 앉은 것처럼, 내 어좌에 나와 함께 앉게 해 주겠다.

22 귀 있는 사람은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1-10

그때에 1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들어가시어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

2 마침 거기에 자캐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세관장이고 또 부자였다.

3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4 그래서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 그곳을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려는 것이었다.

5 예수님께서 거기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며 그에게 이르셨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6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였다.

7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8 그러나 자캐오는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10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헝가리의 왕비이자 가난한 이들의 벗이신 성녀 엘리사벳의 축일입니다.

기도로 인해 사랑이 깊어진 이들이 나설 수 밖에 없는 삶의 모습이 바로 엘리사벳의 모습입니다. 마치 자캐오처럼 자신이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누게 됩니다.

사랑은 그렇게 우리를 이끕니다.


입으로 사랑을 말하지만 나눔이 없다면 그것이 과연 깊은 사랑의 단계에 나아간 것인지 살펴야 합니다.

봉사야 얼마든 할 수 있지만 상처입은 영혼을 돌보지 못한다면 아직 우리는 더 깊은 사랑의 단계에 나아간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에서 어려운 이웃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애써 찾아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힘겨운 이웃을 만나기 쉽지 않습니다.

우리끼리 살아갈 때 우리는 자신의 상처만 자꾸 돌아보기 쉽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신의 영혼을 돌보는 일에만 급급한 우리가 아닙니까?

사람의 아들이 찾아 나선 잃은 이들은 어디에 있을까요?

모두가 찾아 나설 수 없기에 이미 찾아 나선 이들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삶의 길을 후원해주는 좋은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나눌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고 이태석 신부님의 삶이 존경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도 자신의 그 삶의 길을 찾아 나섰고 수많은 이들을 사랑의 대열로 이끌었기 때문에 그러할 것입니다.


한국에 있을 때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중간 중간 아프리카의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후원에 대해 소개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만 미국에서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찾아보시면 어떨까요?

한국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는 이유 중 하나도 6.25 전쟁 이후 소위 서구 선진국가들의 선량한 그리스도인들의 나눔이 있습니다.

선교를 위해 나누는 것이 아니라 나눔을 통해 선교는 일어난 것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내 삶이 진정 풍요로워지는 것은 사랑의 나눔이라는 것을 마음에 새겨 실천하는 하루가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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