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과 묵상. 연중 제26주간 금요일(10/06/2023) <제1독서> ▥ 바룩서의 말씀입니다. 1, 15ㄴ-22 15 주 우리 하느님께는 의로움이 있지만, 우리 얼굴에는 오늘 이처럼 부끄러움이 있을 뿐입니다. 유다 사람과 예루살렘 주민들, 16 우리 임금들과 우리 고관들과 우리 사제들, 우리 예언자들과 우리 조상들에게도 부끄러움이 있을 뿐입니다. 17 우리는 주님 앞에서 죄를 짓고, 18 그분을 거역하였으며, 우리에게 내리신 주님의 명령에 따라 걸으라는 주 우리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19 주님께서 우리 조상들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신 날부터 이날까지 우리는 주 우리 하느님을 거역하고, 그분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을 예사로 여겼습니다. 20 주님께서 우리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시려고 우리 조상들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시던 날, 당신 종 모세를 통하여 경고하신 재앙과 저주가 오늘 이처럼 우리에게 내렸습니다. 21 사실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에게 보내 주신 예언자들의 온갖 말씀을 거슬러, 주 우리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22 우리는 다른 신들을 섬기고 주 우리 하느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지르며, 저마다 제 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대로 살아왔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 13-16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13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앉아 회개하였을 것이다. 14 그러니 심판 때에 티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15 그리고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16 너희 말을 듣는 이는 내 말을 듣는 사람이고, 너희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물리치는 사람이며, 나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물리치는 사람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맹자는 수오지심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수오지심(羞惡之心) : 의롭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착하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을 뜻합니다. 종종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들을 이야기할 때 이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말하곤 합니다. 사람이 완전하지 못하고 그 의지가 끝까지 이르지 못해 잘못하거나 죄를 짓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애쓸 때 그는 사람이라 말합니다. 사람이 사람다워야 하는데,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잃어버리고 살아간다면 예전에 어른들이 말씀하신 대로 금수(禽獸)만도 못하게 되어버립니다. 최초의 인류인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의 명령을 어긴 뒤에 눈이 밝아져 그들이 알몸인 것을 보고 부끄러워하여 나뭇잎으로 몸을 가리고 몸을 숨깁니다. 그처럼 우리에게는 하느님이 모든 사람에게 심어주신 양심이 있습니다. 왠지 양심이 거리끼는 것이 있고 그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양심조차 비뚤어진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세 살 적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조금씩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이 제 본성을 버리고 짐승처럼 산다면 그 사람이 행복할까요? 의미를 잃어버리고 양심을 저버리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조차 잃어버린 사람은 어떤 삶을 결국 걷게 될까요? 자신에게 'excuse'가 너무 많은 삶은 때로는 그런 삶으로 치닫게 되지는 않을까요? 종내에는 하느님조차 내버린 삶을 살게 되고 마치 동력을 잃어버려 떠도는 배처럼 되지는 않을까 합니다. 내 마음에 하느님이 들기를 바라지 말고 하느님 마음에 내가 들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참 평화이고 행복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주님 안에 평화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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