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과 묵상

Title오늘의 말씀과 묵상. 연중 제13주간 목요일(07/01/2021)2021-07-01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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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NEWS 자료실 - 2020년 7월 2일[(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오늘의 말씀과 묵상. 연중 제13주간 목요일(07/01/2021)

 

<1독서>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22,1-9

 

그 무렵 1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해 보시려고 아브라함아!” 하고 부르시자, 그가 ,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거라. 그곳, 내가 너에게 일러 주는 산에서 그를 나에게 번제물로 바쳐라.”

3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얹고 두 하인과 아들 이사악을 데리고서는, 번제물을 사를 장작을 팬 뒤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곳으로 길을 떠났다.

4 사흘째 되는 날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자, 멀리 있는 그곳을 볼 수 있었다.

5 아브라함이 하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에 머물러 있어라. 나와 이 아이는 저리로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 돌아오겠다.”

6 그러고 나서 아브라함은 번제물을 사를 장작을 가져다 아들 이사악에게 지우고, 자기는 손에 불과 칼을 들었다. 그렇게 둘은 함께 걸어갔다.

7 이사악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아버지!” 하고 부르자, 그가 얘야, 왜 그러느냐?” 하고 대답하였다. 이사악이 불과 장작은 여기 있는데, 번제물로 바칠 양은 어디 있습니까?” 하고 묻자,

8 아브라함이 얘야, 번제물로 바칠 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실 거란다.” 하고 대답하였다. 둘은 계속 함께 걸어갔다.

9 그들이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곳에 다다르자, 아브라함은 그곳에 제단을 쌓고 장작을 얹어 놓았다. 그러고 나서 아들 이사악을 묶어 제단 장작 위에 올려놓았다.

10 아브라함이 손을 뻗쳐 칼을 잡고 자기 아들을 죽이려 하였다.

11 그때,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고 그를 불렀다. 그가 ,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12 천사가 말하였다. “그 아이에게 손대지 마라. 그에게 아무 해도 입히지 마라.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 나를 위하여 아끼지 않았으니, 네가 하느님을 경외하는 줄을 이제 내가 알았다.”

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보니, 덤불에 뿔이 걸린 숫양 한 마리가 있었다. 아브라함은 가서 그 숫양을 끌어와 아들 대신 번제물로 바쳤다.

14 아브라함은 그곳의 이름을 야훼 이레라 하였다. 그래서 오늘도 사람들은 주님의 산에서 마련된다.’고들 한다.

15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두 번째로 아브라함을 불러 16 말하였다.

나는 나 자신을 걸고 맹세한다. 주님의 말씀이다. 네가 이 일을 하였으니, 곧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 아끼지 않았으니,

17 나는 너에게 한껏 복을 내리고, 네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한껏 번성하게 해 주겠다. 너의 후손은 원수들의 성문을 차지할 것이다.

18 네가 나에게 순종하였으니, 세상의 모든 민족들이 너의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19 아브라함은 하인들에게 돌아왔다. 그들은 함께 브에르 세바를 향하여 길을 떠났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브에르 세바에서 살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1-8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배에 오르시어 호수를 건너 당신께서 사시는 고을로 가셨다.

2 그런데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평상에 뉘어 그분께 데려왔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3 그러자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속으로 이자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고 생각하였다.

4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에 악한 생각을 품느냐?

5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6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그런 다음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7 그러자 그는 일어나 집으로 갔다.

8 이 일을 보고 군중은 두려워하며,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야훼 이레”, 하느님께서 마련하신다.

그러니 아무 염려 말고 주님의 길을 충실히 걸어갑시다.

때로는 우리의 믿음이 마치 시련에 빠진 듯 고통의 강을 지날지라도

주님께서 마련해주심을 잊지 말고 성실히 하느님을 바라보며 걸어갑시다.

인간적인 고민과 고통의 날들이 신앙의 길에 왜 없겠습니까?

다만 내 믿음이 수많은 밤을 지나야 하기에 더욱 튼튼한 믿음이 필요할 뿐입니다.

 

믿음을 허락하실 수 있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믿음을 강하게 하실 수 있는 분도 하느님이십니다.

내가 노력하면 믿음이 더 강해지고 노력하지 않으면 약해지는 어느 정도는 있겠지만,

결국 믿음은 은총이기에

믿음을 허락하시고 강하게 하시는 하느님께 나아갑시다.

 

오늘도 이리 기도 드리며 이 믿음의 하루를 시작합니다.

은총과 평화가 함께 하시길.

 

아래의 내용은 진동길 마리오 수사님께서 오늘의 말씀을 나누신 부분입니다. 좋은 내용인 듯 하여 교우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아브라함은 그곳의 이름을 야훼(יְהוָ֖ה) 이레(יֵרָאֶֽה׃)’라 하였다. 그래서 오늘도 사람들은 주님의 산에서 마련된다.’고들 한다.

 

Abraham named the site Yahweh-yireh; hence people now say, "On the mountain the LORD will see."

 

'이레(יֵרָאֶֽה׃)' 동사는 '라아(רָאָה) 동사의 변화형인데요.

 

'라아' 동사는 성경에서 1299회나 쓰였던 만큼 그 뜻이 매우 포괄적입니다. 예컨대 '보다, 살피다, 바라보다, 조사하다'는 뜻 외에 '들음' (창세 2,19; 42,1; 탈출 20,19), '맛보다' (창세 3,6), 만지고 느끼고, 마주 보고, 마음으로 인식되고, 즐기는 것까지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야훼 이레"를 직역하면 "야훼 그분이 보실 것입니다"이지요. 사람의 속마음까지 아시는 그분은 사람처럼 자기중심적으로 보거나 오해와 추측으로 왜곡해서 보지 않으시고 '있는 그대로', 존재 자체로 보고 계십니다.

 

사랑해야 하는 것’(Doing)이 아니라 사랑의 존재’(Being)로 기억되고 남겨지는 것이기에.

 

예수님과 아버지의 사랑이 그렇듯. 예수님과 제자들이 그러했듯. 사람 사이에 사랑의 의미는 (사랑)‘해야 하는 것을 넘어선 사랑의 존재가 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미 사랑', '존재 자체'로 기억된 사람끼리는 시련의 시간이 와도, 시험의 시간이 와도. 언제나 신뢰할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 아버지의 사랑

 

아브라함이 100세가 넘어 얻은 귀한 외아들 이사악을 하느님의 말씀대로 번제물로 바치러 아들과 함께 산을 오르는 동안 아버지 아브라함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마음을 아직 헤아리지 못한 철부지 이사악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아버지!” 하고 부릅니다.

 

그가 얘야, 왜 그러느냐?” 하고 대답하자. 이사악이 무척 궁금한 듯 불과 장작은 여기 있는데, 번제물로 바칠 양은 어디 있습니까?” 하고 철없이 물어봅니다.

 

그 순간 아버지 아브라함의 마음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마음이었을 텐데요.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길이기에. 하느님의 핑계를 댑니다.

 

얘야, 번제물로 바칠 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실 거란다.”

 

이 말씀에 잠시 묵상해 봅니다. 아브라함의 순명과 하느님의 뜻을.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제 마음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십자가입니다. ‘간장종지같은 제 뜻으로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아버지의 말씀입니다.

 

얘야, 번제물로 바칠 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실 거란다.”

 

# 너희를 위한 내 사랑을 기억하라

 

얘야, 번제물로 바칠 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실 거란다.”(창세 22,8.)

 

이 말씀에 가슴이 먹먹해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외아들 이사악이 아니라 당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제물로 내어놓으셨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앞으로도 영원히 외아들 예수는 우리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오늘 아브라함과 이사악의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 사건의 예표가 되었습니다.

 

외아들을 제물로 바쳐야 하는 이사악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그 마음을 헤아려 보라고. 너희를 위하여 외아들을 제물로 내어놓아야 하는 아버지의 그 마음이 지금 내(하느님) 마음이라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나는 약속에 충실한 사랑’(Being)이니 내 마음을 닮아 나와 맺은 약속을 기억해 달라고.

 

# ‘사랑’(Being), 그 존재론적인 권한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마태 9,6)

 

유다인들은 사람이 병이 들었다는 것은 그 자체가 이미 부정한 상태였습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존재이자. 죄의 상태에 있음을 의미하였습니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 존재 자체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은 그들의 생각을 바르게 되돌려 놓으십니다. 오늘 중풍병자를 고쳐주신 사건은 그 이면에 아버지의 마음을 세상에 드러내시고자 하는 외아들 예수님의 의도가 담겨있습니다.

 

중풍병자를 고쳐주신 사건으로 예수님은 사랑이신 당신의 권한을 드러내셨고, 아버지의 사랑은 편협한 우리의 마음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자리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치유 사건들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과 구원을 보여주는 표징에 의미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견지망월(見指忘月). 손가락을 보느라 달을 잊은 우리입니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느라 어느새 달은 잊어버리고 손가락만 기억하는 우리가 되지 않기를.

 

아버지의 사랑을 기억하고 외아들을 내어 준 그 사랑을 잊는 것을 경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손가락 끝으로 달을 가리킬 때, 우리가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 손가락이 아니고 인 것처럼 우리가 만나야 할 분은 나를 구원하실 아버지의 사랑과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임을.

 

얘야, 번제물로 바칠 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실 거란다.”(창세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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