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과 묵상

Title오늘의 말씀과 묵상. 성 가를로 보로메오 주교 기념일(11/04/2021)2021-11-04 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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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당신을 미워하는 것을 받아들이십시오. 


오늘의 말씀과 묵상. 성 가를로 보로메오 주교 기념일(11/04/2021)

 

<1독서>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14,7-12

 

형제 여러분, 7 우리 가운데에는 자신을 위하여 사는 사람도 없고 자신을 위하여 죽는 사람도 없습니다.

8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

9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셨다가 살아나신 것은, 바로 죽은 이들과 산 이들의 주님이 되시기 위해서입니다.

10 그런데 그대는 왜 그대의 형제를 심판합니까? 그대는 왜 그대의 형제를 업신여깁니까?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11 사실 성경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살아 있는 한 모두 나에게 무릎을 꿇고 모든 혀가 하느님을 찬송하리라.’”

12 그러므로 우리는 저마다 자기가 한 일을 하느님께 사실대로 아뢰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1-10

 

그때에 1 세리들과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2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4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5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6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7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8 또 어떤 부인이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닢을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 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느냐?

9 그러다가 그것을 찾으면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1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누가 죄인이고 누가 의인입니까?

그것을 나누는 나는 죄인입니까? 의인입니까?

판단을 내리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누구는 나쁘고 누구는 좋다고 나눌 때 우리의 관계는 위축되고 좁아집니다.

특히 같은 신앙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서로 불편하고 어색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을 죄인이라 여겨지는 말아야 합니다.

 

그냥 나는 너의 이런 모습이 때론 힘들도 불편해하는 정도면 어떨까요?

모든 사람이 다 내 마음에 들 수도 없고 모든 사람이 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조금 생각이 다르고 어떤 일에 대해 반응하는 방식이 유쾌하지 않을 수 있을 뿐입니다.

 

신부님. 그러면 그 사람하고 거리를 좀 두어도 되나요?

. 그렇죠. 어떻게 모든 이들과 다 잘 지낼 수 있을까요?

어떤 형제를 판단하는 마음이 자꾸만 생기면 그 형제와 조금은 떨어져 있어도 됩니다.

그리고 내게 그 형제에 대해 조금씩 미안한 마음이 생기면 잘 지내려고 노력하면 되고요.

좀 데면데면한 것이 죄는 아니랍니다.

 

결국, 우리는 관계 속에서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어떤 관계가 깊어지면 그 안에서 상처는 더 크게 생겨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누구에게 거부당하기도 합니까?

그럴 수 있습니다. 그 사람도 내가 싫어서 거부하는 것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마음으로는 다 잘 지내야지 하면서도

모두와 다 잘 지내지 못한 것은

그 사람이 내 맘 같지 않고 내가 그 사람 마음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부로 몇십 년을 살아도 다른 것이 있을진대 어찌 타인과 내가 모든 것에서 다 잘 맞을 수 있을까요?

 

다른 이가 나를 미워할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용기가 그래서 필요합니다.

또 내가 모든 이들과 더불어 잘 지낼 수 있기를 바라지만 그러지 못할 때도 있음을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하느님 안에서 한 형제자매로 살아갑니다.

그렇다고 하여 모든 이가 서로 똑같은 마음이나 정도로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좀 부족하고 못나고 미완성인 채로 살아갈 뿐입니다.

 

부디, 당신의 오늘은 평안하시길.

평화는 싸움이 없는 상황이 아니라 서로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됨을 마음에 새기시기를.

 

날이 참 좋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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