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과 묵상. 연중 제34주간 토요일(11/27/2021) <제1독서> ▥ 다니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7,15-27 15 나 다니엘은 정신이 산란해졌다. 머릿속에 떠오른 그 환시들이 나를 놀라게 하였다. 16 그래서 나는 그곳에 서 있는 이들 가운데 하나에게 다가가서, 이 모든 일에 관한 진실을 물었다. 그러자 그가 그 뜻을 나에게 알려 주겠다고 말하였다. 17 “그 거대한 네 마리 짐승은 이 세상에 일어날 네 임금이다. 18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룩한 백성이 그 나라를 이어받아 영원히, 영원무궁히 차지할 것이다.” 19 나는 다른 모든 짐승과 달리 몹시 끔찍하게 생겼고, 쇠 이빨과 청동 발톱을 가졌으며, 먹이를 먹고 으스러뜨리며 남은 것은 발로 짓밟는 네 번째 짐승에 관한 진실을 알고 싶었다. 20 그리고 그 짐승의 머리에 있던 열 개의 뿔과 나중에 올라온 또 다른 뿔에 관한 진실도 알고 싶었다. 그 다른 뿔 앞에서 뿔 세 개가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그 다른 뿔은 눈을 가지고 있었고 입도 있어서 거만하게 떠들어 대고 있었으며, 다른 것들보다 더 커 보였다. 21 내가 보니 그 뿔은 거룩한 백성과 전쟁을 벌여 그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22 마침내 연로하신 분께서 오셨다. 그리하여 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룩한 백성에게 권리가 되돌려졌다. 이 거룩한 백성이 나라를 차지할 때가 된 것이다. 23 그천사가 이렇게 말하였다. “네 번째 짐승은 이 세상에 생겨날 네 번째 나라이다. 그 어느 나라와도 다른 이 나라는 온 세상을 집어삼키고 짓밟으며 으스러뜨리리라. 24 뿔 열 개는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임금이다. 그들 다음으로 또 다른 임금이 일어날 터인데 앞의 임금들과 다른 이 임금은 그 가운데에서 세 임금을 쓰러뜨리리라. 25 그는 가장 높으신 분을 거슬러 떠들어 대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룩한 백성을 괴롭히며 축제일과 법마저 바꾸려고 하리라. 그들은 일 년, 이 년, 반년 동안 그의 손에 넘겨지리라. 26 그러나 법정이 열리고 그는 통치권을 빼앗겨 완전히 패망하고 멸망하리라. 27 나라와 통치권과 온 천하 나라들의 위력이 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룩한 백성에게 주어지리라. 그들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가 되고 모든 통치자가 그들을 섬기고 복종하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34-3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그리고 그날이 너희를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하여라. 35 그날은 온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들이닥칠 것이다. 36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스스로 조심하여” 오랜만에 기사 하나를 찾아봅니다. 아래의 기사는 중앙일보에 실린 “신독”의 가르침에 관한 내용입니다. “남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착한 일을 행하기란 쉽다. 남들이 다 들을 수 있는 곳에서는 모두 고운 말을 쓴다. 그러나 남들이 지켜보지 않고, 남들이 들을 수 없는 곳에서 스스로 언행(言行)을 조심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중용(中庸)에선 “군자는 보지 않는 곳에서 삼가고(戒愼乎 其所不睹), 들리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 두려워한다(恐懼乎 其所不聞)”고 쓰고 있다. 이런 경지에 오른 상태가 바로 ‘신독(愼獨)’이다. 남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즉 혼자 있을 때 스스로 삼간다는 뜻이다. 유학에서 말하는 개인 수양(修身)의 최고 단계다. 중용(中庸)은 이어 “숨겨져 있는 것보다 더 잘 보이는 것은 없고(莫見乎隱), 아주 작은 것보다 더 잘 드러나는 것은 없다(莫顯乎微). 그러기에 군자는 홀로 있을 때 스스로 삼간다(故君子愼其獨也)”고 했다. 군자의 풍모는 은밀할 때, 아주 작은 부분에서 더 잘 드러난다는 얘기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엄격하게 자기관리를 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송사·채원정전(宋史·蔡元定傳)에서는 ‘신독’을 이렇게 해석했다. “밤길 홀로 걸을 때 그림자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하고, 홀로 잠잘 때에도 이불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獨行不愧影 獨寢不愧衾).” 흔히 엄격한 자기관리를 뜻하는 ‘행불귀영(行不愧影)’이라는 성어가 여기서 비롯됐다. 이는 시인 윤동주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라고 표현한 시(詩) 구절과 같은 맥락이다.“(2012년 8월 13일자) 우리 그리스도교적 언어로 말한다면 신독(愼獨)이란 바로 깨어있음입니다. 깨어있음으로 해서 깨닫고 그 깨달음을 행하면 그것이 바로 참된 깨어있음입니다. 홀로 있어도 깨어있는 사람이 우리 그리스도인입니다. 세상 만사는 변하고 있는 것은 없어지고 또 없던 것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변하는 것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영원하신 하느님이라 말할 때 그것은 하느님의 변함없음을 말합니다. 우리는 그 하느님을 섬기고 자신의 삶 안으로 그 영원을 끌어당기는 사람임을 알면 참 좋겠씁니다. 오로지 깨어있는 마음만이 영원을 볼 줄 알고 살아갈 수 있으니 그는 당당히 자신의 길을 걸어갑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평화란 바로 깨어있는 사람이 누리는 자유임을 마음에 새깁니다. 그리고 평화란 하느님의 은총임을, 비할데 없는 참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그 하느님의 평화가 함께 하시는 기쁨의 오늘이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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