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과 묵상

Title오늘의 말씀과 묵상. 연중 제28주간 목요일(10/19/2023)2023-10-19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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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과 묵상. 연중 제28주간 목요일(10/19/2023)

 

<1독서>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3,21-30

 

형제 여러분, 21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의로움이 나타났습니다. 이는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하는 것입니다.

22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오는 하느님의 의로움은 믿는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아무 차별도 없습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

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25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 내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는 믿음으로 얻어집니다. 사람들이 이전에 지은 죄들을 용서하시어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려고 그리하신 것입니다.

26 이 죄들은 하느님께서 관용을 베푸실 때에 저질러졌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어, 당신께서 의로우신 분이며 또 예수님을 믿는 이를 의롭게 하시는 분임을 드러내십니다.

27 그러니 자랑할 것이 어디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무슨 법으로 그리되었습니까? 행위의 법입니까? 아닙니다. 믿음의 법입니다.

28 사실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우리는 확신합니다.

29 하느님은 유다인들만의 하느님이십니까? 다른 민족들의 하느님은 아니십니까? 아닙니다. 다른 민족들의 하느님이시기도 합니다.

30 정녕 하느님은 한 분이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47-54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47 “너희는 불행하여라! 바로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너희가 만들기 때문이다.

48 이렇게 너희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이고 너희는 그들의 무덤을 만들고 있으니, 조상들이 저지른 소행을 너희가 증언하고 또 동조하는 것이다.

49 그래서 하느님의 지혜도, ‘내가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낼 터인데, 그들은 이들 가운데에서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박해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50 그러니 세상 창조 이래 쏟아진 모든 예언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이 세대가 져야 할 것이다.

51 아벨의 피부터,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죽어 간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52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53 예수님께서 그 집을 나오시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독한 앙심을 품고 많은 질문으로 그분을 몰아대기 시작하였다.

54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그분을 옭아매려고 노렸던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이스라엘 사람들은 왜 예언자들을 박해하거나 죽이기까지 하였을까요?

예언자는 하느님의 말씀을 맡아서 전하는 사람입니다.

예언자는 하느님의 편에서, 하느님의 관점에서 말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 싫어서 예언자들을 쫓아내거나 박해한 것입니다.

왜 싫어했을까요?

귀에 거슬리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시끄럽게 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병에는 이로우며, 충고하는 말은 듣기는 싫지만, 자신에겐 이롭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음에 듣기는 싫지만 이로운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충고가 듣기 싫어서입니다.

귀를 닫아서 그렇습니다.

 

결국, 달콤함은 위험하고 충고를 멀리하면 손해를 입습니다.

이익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데 참된 이익은 멀리하고 눈앞의 이익만 따르기에 그렇습니다.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박해한 것처럼 마침내 하느님이신 예수님조차 어찌 되었든 버리려 합니다.

자신의 삶을 위협한다 여겼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그리하자면 모든 부모는 자녀에게 아무 말도 말아야 할 것입니다.

자신은 하느님의 말씀을 귀찮게 여기면서 어찌 자녀에게는 쓴소리할 것이며 쓴 약을 줄 것입니까?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그분의 말씀을 귀히 여기고 성실히 따라갈 때 야만이 우리가 진정 행복하게 살 줄을 모릅니다.

 

하느님이 빛나는 장식품이나 값싼 위안거리정도로만 여겨지는 세상입니다.

하느님을 이용하는데 그치는 세상입니다.

그 세상 안에서 우리는 살아갑니다.

우리라도 하느님을 온전히 따라살 수 없다는 말입니까?

 

당신의 마음이 있는 곳에 당신도 있습니다.

하느님 말씀을 귀히 여기고 마음에 새기며 온전히 실천하는 은혜로운 오늘을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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