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과 묵상

Title오늘의 말씀과 묵상. 대림 제3주간 목요일(12/16/2021)2021-12-16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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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과 묵상. 대림 제3주간 목요일(12/16/2021)

 

<1독서>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54,1-10

 

1 환성을 올려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아! 기뻐 소리쳐라, 즐거워하여라, 산고를 겪어 보지 못한 여인아! 버림받은 여인의 아들들이 혼인한 여인의 아들들보다 많을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2 너의 천막 터를 넓혀라. 네 장막의 휘장을 아낌없이 펼쳐라. 네 천막 줄을 길게 늘이고 말뚝을 단단히 박아라.

3 네가 좌우로 퍼져 나가고 네 후손들이 뭇 나라를 차지하여 황폐한 성읍들에 자리 잡을 것이다.

4 두려워하지 마라. 네가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 수치스러워하지 마라. 네가 창피를 당하지 않으리라. 네 젊은 시절의 부끄러움을 잊고 네 과부 시절의 치욕을 네가 다시는 회상하지 않으리라.

5 너를 만드신 분이 너의 남편, 그 이름 만군의 주님이시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 너의 구원자, 그분께서는 온 땅의 하느님이라 불리신다.

6 정녕 주님께서는 너를 소박맞아 마음 아파하는 아내인 양 퇴박맞은 젊은 시절의 아내인 양 다시 부르신다. 너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7 “내가 잠시 너를 버렸지만 크나큰 자비로 너를 다시 거두어들인다.

8 분노가 북받쳐 내 얼굴을 잠시 너에게서 감추었지만 영원한 자애로 너를 가엾이 여긴다.” 네 구원자이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9 “이는 나에게 노아의 때와 같다. 노아의 물이 다시는 땅에 범람하지 않으리라고 내가 맹세하였듯이 너에게 분노를 터뜨리지도 너를 꾸짖지도 않겠다고 내가 맹세한다.

10 산들이 밀려나고 언덕들이 흔들린다 하여도 나의 자애는 너에게서 밀려나지 않고 내 평화의 계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너를 가엾이 여기시는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7,24-30

 

24 요한의 심부름꾼들이 돌아가자 예수님께서 요한을 두고 군중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25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화려한 옷을 입고 호화롭게 사는 자들은 왕궁에 있다.

26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다.

27 그는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사람이다. ‘보라, 네 앞에 나의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2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다. 그러나 하느님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29 요한의 설교를 듣고 그의 세례를 받은 백성은 세리들까지 포함하여 모두 하느님께서 의로우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30 그러나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지 않은 바리사이들과 율법 교사들은 자기들을 위한 하느님의 뜻을 물리쳤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찬미예수님. 오늘 아침은 참 좋은 날입니다. 어제 그렇게 바람이 불더니.

! 신부님들께서 판공성사를 위해 올라오던 중 많은 화물 트럭이 강풍에 도로 옆으로 쓰러져 있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어제 판공 성사를 위해 애써주신 전례분과장님과 모든 사목위원 봉사자분께, 그리고 함께 하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보이는, 보이지 않는 분들의 수고를 생각하면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혹시 어제 여러 이유로 판공성사를 보지 못하신 분들이 주일이면 몰리지 않을까 예상해 봅니다.

고해성사를 형식적으로 보지 않고 진심을 다하기에 시간이 걸리고 그랬지만 참고 인내해주신 형제 자매님께도 감사한 마음입니다.

오늘이 좋고 좋은 날이 되시길 기도드리고 마음을 다해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무엇을 보러, 무엇을 구경하러 나왔더냐?”고 군중에게 묻습니다.

이 질문은 신앙을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입니다.

우리는 어떤 이유로 우리의 신앙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도 무엇을 보러, 혹은 무엇을 구경하러 나온 것은 아닐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자신의 신앙을 살아가는데 굉장히 중요합니다.

신앙은 그렇게 스스로에 대한 성찰과 질문, 그리고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신앙에서 스스로 관객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예전의 사람들은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무엇을 보러, 혹은 구경하러 나와 박수치는 이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신앙을 살아내는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박수치는 이가 아니라 박수받는 이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른 아침, 서둘러 일어나 신부님들을 공항에 모시기 위해 준비하며 이 글을 씁니다.

그리고 저에게 묻습니다.

나는 내 삶의 주인공인가?

나는 내가 말하는 신앙의 주인공인가?

치열함은 신자들에게만 강요하고 스스로는 그저 관리자로 살아가는 이가 아닌가?

 

이 아침에 하는 나의 성찰이 무겁기도 하지만

다만 그러므로써 내가 내 신앙의 책임자임을 깨닫기를 바랄 뿐입니다.

 

형제들도 그와 같기를!

바람은 언제나 한가지입니다.

내가 신앙을 이 겨울처럼 치열하게 살아내고 그 살아냄이 나의 기쁨이 되기를!

 

주님의 평화가 언제나 함께 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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