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과 묵상

Title오늘의 말씀과 묵상. 연중 제30주간 토요일(10/29/2022)2022-10-29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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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과 묵상. 연중 제30주간 토요일(10/29/2022)

 

<1독서> 사도 바오로의 필리피서 1, 18-26

 

형제 여러분, 18 가식으로 하든 진실로 하든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니, 나는 그 일로 기뻐합니다. 사실 나는 앞으로도 기뻐할 것입니다.

19 여러분의 기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도움으로 이 일이 나에게는 구원으로 끝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희망은, 내가 어떠한 경우에도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고, 언제나 그러하였듯이 지금도, 살든지 죽든지 나의 이 몸으로 아주 담대히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21 사실 나에게는 삶이 곧 그리스도이며 죽는 것이 이득입니다.

22 그러나 내가 육신을 입고 살아야 한다면, 나에게는 그것도 보람된 일입니다. 그래서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23 나는 이 둘 사이에 끼여 있습니다. 나의 바람은 이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편이 훨씬 낫습니다.

24 그러나 내가 이 육신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 여러분에게는 더 필요합니다.

25 이러한 확신이 있기에, 여러분의 믿음이 깊어지고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내가 남아 여러분 모두의 곁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26 그리하여 내가 다시 여러분에게 가면,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자랑할 거리가 나 때문에 더욱 풍성해질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 14, 1.7-11

 

1 예수님께서 어느 안식일에 바리사이들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의 집에 가시어 음식을 잡수실 때 일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었다.

7 예수님께서는 초대받은 이들이 윗자리를 고르는 모습을 바라보시며 그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8 “누가 너를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마라. 너보다 귀한 이가 초대를 받았을 경우,

9 너와 그 사람을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이분에게 자리를 내 드리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너는 부끄러워하며 끝자리로 물러앉게 될 것이다.

10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그러면 너를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여보게, 더 앞 자리로 올라앉게.’ 할 것이다. 그때에 너는 함께 앉아 있는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11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존중받기를 원합니다.

서로 존중받고 서로 더 많이 가지고 서로 더 편하게 살고자 하는 욕망이 우리를 내몹니다.

욕망의 전차에서 내려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자신이 가진 의견도 때로는 물러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공동체를 위한다는 뜻 아래 가만히 살펴보면 자신이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더 많을 때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포기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을 포기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인정받기를 포기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존중받기를 포기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구하지 않아도 존중받을 만하면 존중해 줄 것입니다.

인정받을 만하면 인정해줄 것입니다.

 

물론 욕망이, 욕구가 우리를 이만큼 발전으로 이끈 주요한 힘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정말 발전인지는 따져볼 일이지요.

더 행복해지지 않는다면 진정한 의미의 발전이라 말하기란 어렵지 않을까요?

 

공동체의 발전도 그러합니다.

외양이 화려해지면 발전이라 생각합니다.

사람이 많아지면 발전이라 생각합니다.

과연 그러합니까?

 

겸손한 사람이 많아지면 행복해집니다.

신앙이 깊어지면 행복해집니다.

화려한 볼거리가 없어도 서로를 존중하면 행복해집니다.

 

사람들은 자주 헷갈립니다.

남이 좋게 말하면 정말 잘한다 생각하기 쉽습니다.

내가 남에게 좋게 말하지, 남에게 대놓고 싫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관계가 비틀어지기 때문입니다.

비판에는 그렇게 온몸이 달아오르고 자존심이 상합니다.

아첨에는 그렇게 기분이 좋고 이뻐 보입니다.

 

내려서 보면 보이는 것도 보지 못하게 되는 이유도

남이 나에게 어떻게 한 것이기보다

내가 그렇게 교만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몰라도 하느님은 압니다.

심지어 나 자신조차 오랫동안의 허위와 가식의 옷을 입고 살다 보면

자신을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깨뜨리고 벗어버려야 합니다.

믿음은 그래서 시련이기도 합니다.

오랫동안의 악습을 벗어야 하기에,

맨몸으로 광야에 서야 하기에,

그런 순간을 반드시 겪어야만 하기에,

 

그래도 당신은 이 믿음의 길을 가시겠습니까?

 

당신의 오늘을 힘차게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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