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과 묵상

Title 오늘의 말씀과 묵상. 성탄 팔일 축제 내 5일(12/29/2022)2022-12-29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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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과 묵상. 성탄 팔일 축제 내 5(12/29/2022)

 

<1독서> 요한 12, 3-11

 

사랑하는 여러분, 3 우리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면, 그것으로 우리가 예수님을 알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4 “나는 그분을 안다.” 하면서 그분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거짓말쟁이고, 그에게는 진리가 없습니다.

5 그러나 누구든지 그분의 말씀을 지키면, 그 사람 안에서는 참으로 하느님 사랑이 완성됩니다. 그것으로 우리가 그분 안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6 그분 안에 머무른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기도 그리스도께서 살아가신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7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것은 새 계명이 아니라, 여러분이 처음부터 지녀 온 옛 계명입니다. 이 옛 계명은 여러분이 들은 그 말씀입니다.

8 그러면서도 내가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것은 새 계명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도 또 여러분에게도 참된 사실입니다. 어둠이 지나가고 이미 참빛이 비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9 빛 속에 있다고 말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아직도 어둠 속에 있는 자입니다.

10 자기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빛 속에 머무르고, 그에게는 걸림돌이 없습니다.

11 그러나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 속에 있습니다. 그는 어둠 속에서 살아가면서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루카 2, 22-35

 

2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23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24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25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26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27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28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29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30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31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32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35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어제저녁 미사 후부터 내리던 눈이 제법 쌓였습니다.

그래도 겨울이라 눈이 오는 것이니 걱정보다는 고마움입니다.

눈 치울 걱정보다는 더는 내리지 않으니 그마저도 감사함입니다.

오고 가는 길 모두 조심하시고 평안한 오늘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예수님의 성탄을 큰 기쁨으로 기억하는 성탄 팔일 축제 다섯 번째 날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가장 깊은 증언을 한 것으로 전해지는 요한의 편지를 우리는 이 주간 내내 듣게 됩니다.

하느님은 누구이신가?

사실 하느님은 그 누구이기도 하시고 그 누구도 아니기도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존재 방식은 우리와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라고.

완전한 사랑이시라고 요한은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과연 그러합니다.

깊은 사랑에 다다른 사람은 하느님을 압니다.

왜인지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신비로서 그렇게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사람도 사랑으로 산다는 것을 압니다.

사랑이 없으면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외로운 것인지도 압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하느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게 됩니다.

사랑에 어긋나는 말을 하기가 힘들고, 사랑을 벗어난 삶을 살기도 힘들어집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느님으로부터 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랑의 길이 모든 이에게 박수받는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길에서 벗어난 이들이, 죄에 물든 이들이, 어둠에 잠겨 있는 이들이 갖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들의 두려움은 시기와 질투, 음모와 뒷담화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어제도 말씀드린 대로 사랑에 빠져들기보다 미움이 빠져드는 것이 훨씬 쉬워서

그들은 우리 사랑의 길을 시험하는 것처럼 여겨질 때도 많습니다.

그 때문에 많은 이들은 그들 사랑의 길에서 이탈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길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직 그 길만이 나에게 참된 충만과 기쁨을 허락하기 때문입니다.

 

! 우리는 오직 사랑으로 살고 사랑으로 죽습니다.

그것만이 그리스도인의 길입니다.

 

천사도 그 길에서 벗어나 악마가 된다고 합니다.

사랑의 길에 벗어난 죄의 길, 어둠의 길은 행복과 구원을 주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당신은 좋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

당신이 그 길을 힘써 그리고 애써 걸어가시기를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성탄하신 하느님께서 당신의 그 길의 등불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하느님은 당신이 먼저 앞서서 그 길이 되어 주셨습니다.

 

주님의 평안이 함께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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