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과 묵상

Title오늘의 말씀과 묵상. 주님 봉헌 축일(축성 생활의 날. 2/2/2023)2023-02-02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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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과 묵상. 주님 봉헌 축일(축성 생활의 날. 2/2/2023)

 

<1독서> 말라키 3, 1-4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너희가 좋아하는 계약의 사자 보라, 그가 온다.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2 그가 오는 날을 누가 견디어 내며 그가 나타날 때에 누가 버티고 서 있을 수 있겠느냐? 그는 제련사의 불 같고 염색공의 잿물 같으리라.

3 그는 은 제련사와 정련사처럼 앉아 레위의 자손들을 깨끗하게 하고 그들을 금과 은처럼 정련하여 주님에게 의로운 제물을 바치게 하리라.

4 그러면 유다와 예루살렘의 제물이 옛날처럼, 지난날처럼 주님 마음에 들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루카 2, 22-40

 

2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23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24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25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26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27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28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29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30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31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32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35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36 한나라는 예언자도 있었는데, 프누엘의 딸로서 아세르 지파 출신이었다. 나이가 매우 많은 이 여자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

37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38 그런데 이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39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그들은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40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의 성탄 후 꼭 40일째 되는 오늘, 교회는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한 것을 기념하는 주님 봉헌 축일을 지냅니다.

그리고 이 봉헌의 의미를 더욱 뜻깊게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하여 교회는 이날 1년 동안 성당과 각 가정에서 사용할 초를 축성합니다.

 

자신을 태워 세상을 밝히는 사람이 되십시오.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빛과 소금의 비유로 우리 안에 오랫동안 기억되는 이 말씀을 받들어 봉헌의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그리고 봉헌이 겪게 되는 자신을 녹여내어야만 하는 고통을 기억합니다.

 

자식은 부모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고 성장합니다.

그리 말하면 부모는 자식을 위해 자신을 봉헌하는 것입니다.

자녀를 위해 겪는 부모의 수고는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이 수고를 고통이라고 느끼거나 말하지 않습니다.

그건 당연히 그러해야 하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처럼 봉헌하는 사람은 수고를 고통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것은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가끔 신자분들이, “신부님, 수고 많으십니다.” 하고 말씀하시면 몸 둘 바를 모르게 됩니다.

물론 어떤 말씀인지를 헤아려 알아듣기에, “. 감사합니다.”하고 말씀드리지만

부모가 자녀를 위해 애쓰는 것처럼,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 애쓰는 것처럼 이르기를 마음으로 소망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유는,

당신이 항상 앞장서 가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먼저 자신을 봉헌의 삶으로,

사랑 때문에 온갖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삶으로,

마침내 사랑의 완성인 십자가로

걸어가셨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에게서 사랑을 보듯이, 예수님에게서 완전한 사랑을 봅니다.

수고가 없는 사랑은 없고, 고통이 없는 사랑은 없습니다.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에 수고스럽고 고통스럽습니다.

~ 이것의 본질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합니까?

그리고 이것을 알면서도 살아가면서 짐짓 그 사랑의 수고에서 벗어나려 부단히도 애쓰는 사람은 얼마나 고독합니까?

그 채워지지 않는 갈망은 다른 것으로 절대로 대체되지 않습니다.

 

주님 봉헌 축일인 오늘, 나의 사랑의 수고로움이 나를 완성하는 일임을 깨닫고 더 큰 수고를 마다치 않는 삶을 결심해봅니다.

 

그리고 교회는 오늘 모든 봉헌생활자들(축성생활자들, 우리가 보면 보통 수녀님들)을 위해 특별한 기도를 봉헌하도록 권고합니다.

우리 공동체와 더불어 살아가시는 세 분 수녀님, 요한나, 스테파니야, 암브로시아 수녀님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바침으로 이 세상에 주님의 복음을 증거하고 주님의 봉헌을 살아가시는 이들이 영육간에 더욱 강건해지시기를 함께 기도하신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 생각해 보면 기도도 수고로움이 없다면 어찌 기도라 말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언제나 함께하시길 기도드리고 또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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