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과 묵상

Title오늘의 말씀과 묵상. 성주간 수요일(04/05/2023)2023-04-05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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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과 묵상. 성주간 수요일(04/05/2023)

 

<1독서>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50,4-9

 

4 주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제자의 혀를 주시어 지친 이를 말로 격려할 줄 알게 하신다. 그분께서는 아침마다 일깨워 주신다. 내 귀를 일깨워 주시어 내가 제자들처럼 듣게 하신다.

5 주 하느님께서 내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6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7 그러나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내 얼굴을 차돌처럼 만든다. 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8 나를 의롭다 하시는 분께서 가까이 계시는데 누가 나에게 대적하려는가? 우리 함께 나서 보자. 누가 나의 소송 상대인가? 내게 다가와 보아라.

9 보라,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는데 나를 단죄하는 자 누구인가?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6, 14-25

 

14 그때에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유다 이스카리옷이라는 자가 수석 사제들에게 가서,

15 “내가 그분을 여러분에게 넘겨주면 나에게 무엇을 주실 작정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들은 은돈 서른 닢을 내주었다.

16 그때부터 유다는 예수님을 넘길 적당한 기회를 노렸다.

17 무교절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스승님께서 잡수실 파스카 음식을 어디에 차리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18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도성 안으로 아무개를 찾아가, ‘선생님께서 나의 때가 가까웠으니 내가 너의 집에서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축제를 지내겠다.하십니다.’ 하여라.”

19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파스카 음식을 차렸다.

20 저녁때가 되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식탁에 앉으셨다.

21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22 그러자 그들은 몹시 근심하며 저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기 시작하였다.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나와 함께 대접에 손을 넣어 빵을 적시는 자, 그자가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24 사람의 아들은 자기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

25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가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 하고 대답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 이후의 시간 속에 고통스럽게도 예수님의 죽음의 순간들과 의미를 찾았습니다.

그들의 회한은 하느님 말씀인 성경 속에서 그 답을 찾고 하느님의 힘이신 성령의 도움으로 새로운 힘을 얻게 된 주요한 계기였습니다.

도대체 예수님은 누구이신가? 하는 물음이 그들에게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예수님이 자신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물음이었던 거죠.

 

그래서 오늘의 나에게 묻습니다.

예수님이란 분은 나에게 그토록 중요한 물음인가?

그리고 그런 물음에 대한 나의 답은 얼마나 정답에 가까울까?

 

그냥 유다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았습니다.

유다도 혼자서만 끙끙대지 말고 폭넓게 정답을 구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혼자서 생각하고 혼자서 답내리며 살지 말고

하느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더 많이 대화하고 그렇게 노력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우리도 어떤 문제에 직면하면 혼자서 해결합니다.

생각이 많아지고 깊어지면서 다른 곳에서는 정답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깊어져 버립니다.

 

그런데 정답이 있느냐 하는 문제는 따로 떼어놓더라도

부디 신앙인이면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하느님과 더 깊은 대화 속에서

정답을 찾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찾은 정답이 맞냐고 교회 안에서 물어보면 참 좋겠습니다.

 

선한 의지로 시작된 물음들도 때로는 어긋난 답을 가지게 되는 경우도 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교회는 제자들의 신앙공동체입니다.

교회가 때로는 부족하고 못난 모습을 보이지만 교회를 구성하는 각 개인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통해 우리는 뛰어넘게 됩니다.

교회가 사람으로 이루어져 피곤하고 때때로 어긋나 보이지만, 하느님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는 한 교회는 나에게 때론 정답을 준다는 사실을 알면 얼마나 좋을까요?

 

고통이 적기를 바라지만 고통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고통을 뛰어넘고 그 고통의 의미를 바라볼 수 있게 해 주는 하느님의 힘과 용기를 교회를 통하여 꼭 얻으십시오.

 

유다의 실망이 아니라 베드로의 회심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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