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과 묵상

Title오늘의 말씀과 묵상. 연중 제9주간 수요일(06/07/2023)2023-06-07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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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과 묵상. 연중 제9주간 수요일(06/07/2023)

 

<1독서> 토빗기의 말씀입니다 .3, 1-11.16-17

 

그 무렵 나 토빗은 1 마음이 몹시 괴로워 탄식하며 울었다. 그리고 탄식 속에서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2 “주님, 당신께서는 의로우십니다. 당신께서 하신 일은 모두 의롭고 당신의 길은 다 자비와 진리입니다. 당신은 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3 이제 주님, 저를 기억하시고 저를 살펴보아 주소서. 저의 죄로, 저와 제 조상들이 알지 못하고 저지른 잘못으로 저를 벌하지 마소서. 그들은 당신께 죄를 짓고

4 당신의 계명들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신께서는 저희를 약탈과 유배와 죽음에 넘기시고 당신께서 저희를 흩으신 모든 민족들에게 이야깃거리와 조롱거리와 우셋거리로 넘기셨습니다.

5 저의 죄에 따라 저를 다루실 적에 내리신 당신의 그 많은 판결들은 다 참되십니다. 저희는 당신의 계명들을 지키지 않고 당신 앞에서 참되게 걷지 않았습니다.

6 이제 당신께서 좋으실 대로 저를 다루시고 명령을 내리시어 제 목숨을 앗아 가게 하소서.

그리하여 제가 이 땅에서 벗어나 흙이 되게 하소서. 저에게는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습니다. 제가 당치 않은 모욕의 말을 들어야 하고 슬픔이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주님, 명령을 내리시어 제가 이 곤궁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제가 이곳에서 벗어나 영원한 곳으로 들게 하소서. 주님, 저에게서 당신의 얼굴을 돌리지 마소서. 살아서 많은 곤궁을 겪고 모욕의 말을 듣는 것보다 죽는 것이 저에게는 더 낫습니다.”

7 바로 그날, 메디아의 엑바타나에 사는 라구엘의 딸 사라도 자기 아버지의 여종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서 모욕하는 말을 듣게 되었다.

8 사라는 일곱 남자에게 시집을 갔지만, 신부와 관련된 관습에 따라 신랑이 사라와 한 몸이 되기도 전에, 아스모대오스라는 악귀가 그 남편들을 죽여 버렸다. 그래서 그 여종이 사라에게 이렇게 말하였던 것이다. “당신 남편들을 죽이는 자는 바로 당신이에요. 당신은 이미 일곱 남자에게 시집을 갔지만 그들 가운데에서 누구의 이름도 받지 못했어요.

9 그런데 당신 남편들이 죽었으면 죽었지 우리는 왜 때려요? 남편들이나 따라가시지. 그래야 우리가 당신의 아들이나 딸을 영영 보지 않게 되죠.”

10 그날 사라는 마음에 슬픔이 가득하여 울면서, 자기 아버지 집의 위층 방으로 올라가 목을 매려고 하였다. 그러나 생각을 다시 하고서는 이렇게 혼잣말을 하였다. “사람들이 당신에게는 사랑하는 외동딸밖에 없었는데 그 애가 불행을 못 이겨 목을 매고 말았구려.’ 하면서, 내 아버지를 모욕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지. 만일 그렇게 되면 늙으신 아버지께서 나 때문에 슬퍼하시며 저승으로 내려가시게 되겠지. 목을 매는 것보다는, 평생 모욕하는 말을 듣지 않도록 죽게 해 주십사고 주님께 기도하는 것이 낫겠다.”

11 그러면서 사라는 창 쪽으로 양팔을 벌리고 기도하였다.

16 바로 그때에 그 두 사람의 기도가 영광스러운 하느님 앞에 다다랐다.

17 그래서 라파엘이 두 사람을 고쳐 주도록 파견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 18-27

 

그때에 18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이 예수님께 와서 물었다.

19 “스승님, 모세는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 아내만 두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저희를 위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20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21 그래서 둘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지만 후사를 두지 못한 채 죽었고, 셋째도 그러하였습니다.

22 이렇게 일곱이 모두 후사를 남기지 못하였습니다. 맨 마지막으로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23 그러면 그들이 다시 살아나는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2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25 사람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

26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에 관해서는, 모세의 책에 있는 떨기나무 대목에서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읽어 보지 않았느냐?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너희는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라파엘(히브리어: רפאל)‘ ‘하느님께서 고쳐 주셨다.’

 

아기의 이름을 지을 때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아기의 이름은 부모나 또 다른 이의 소망과 간절함입니다.

아무렇게나 결코 아기의 이름을 짓지 않습니다.

 

세례성사를 통해 영원한 생명을 시작할 때 받게 되는 세례명 또한 그렇습니다.

오래 기도하고 숙고하고 주변에 물어서 세례명을 짓게 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세례명에 담긴 뜻을 아시나요?

 

어릴 때야 저도 세례명의 뜻인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궁금하여 찾아본 적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고쳐 주신다는 뜻의 대천사 라파엘에 관한 성경의 증언은 오늘 묵상하는 토빗서에 나옵니다.

어느 날 세례명에 담긴 이름 뜻을 찾고선 무릎을 '' 쳤습니다.

하느님께서 꼭 고쳐 주셔야 한다고 말입니다.

 

나를 낫게 해주시고 바로잡아 주시고 건강하게 해 주셔야 내가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이 왜 그렇게 지으셨는지, 아마 세례를 주신 신부님의 뜻이 어떠했기에 그런 세례명을 갖게 되었는지는 여쭈어보지 못했지만,

제게 꼭 맞는 세례명이구나 싶었습니다.

 

지난 월요일부터 부산교구 신부님 9분이 오셔서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저로서는 생면부지의 신부님도 계시고, 졸업한 후 25년이 지나 얼굴을 본 이들이 허다합니다.

사목 위원분들의 수고가 참 많고 봉사자의 도움이 엄청나 잘 지내고 계시는 듯합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분들도, 저도, 그리고 여러분 모두도

다 이름을 가진 이들이라는 사실을요.

누군가의 희망이고 누군가의 바람이고 누군가의 기대임을 자꾸 잊어버리고 삽니다.

 

그만큼의 무게만으로라도 그들을 섬기고 대하고 모셔야 합니다.

자신을 대할 때도 그러해야 할 것입니다.

자신도 자신을 규정할 때 누군가의 희망이고 바램이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 삶이 좀 달라지려나요?

 

! 세례명은 당신을 향한 하느님의 기대임을 기억하면 참 좋겠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우리 삶도 더 깊어지겠죠?

 

그런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가시길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평화의 하느님께서 당신과 함께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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