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과 묵상

Title오늘의 말씀과 묵상. 연중 제10주간 목요일(6/15/2023)2023-06-15 01:34
Name

mb-file.php?path=2023%2F06%2F15%2FF3176_%EC%82%AC%EB%9E%91%20%EA%B7%B8%EB%A6%AC%EA%B3%A0%20%EB%AF%B8%EC%9B%80.jpg
 

오늘의 말씀과 묵상. 연중 제10주간 목요일(6/15/2023)

 

<1독서>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 3, 154,1.3-6

 

형제 여러분, 오늘날까지도 모세의 율법을 읽을 때마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15 마음에는 너울이 덮여 있습니다.

16 그러나 주님께 돌아서기만 하면 그 너울은 치워집니다.

17 주님은 영이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18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은 얼굴로 주님의 영광을 거울로 보듯 어렴풋이 바라보면서, 더욱더 영광스럽게 그분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어 갑니다. 이는 영이신 주님께서 이루시는 일입니다.

4,1 이렇게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를 입어 이 직분을 맡고 있으므로 낙심하지 않습니다.

3 우리의 복음이 가려져 있다 하여도 멸망할 자들에게만 가려져 있을 뿐입니다.

4 그들의 경우, 이 세상의 신이 불신자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 하느님의 모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선포하는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5 우리가 선포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선포하고, 우리 자신은 예수님을 위한 여러분의 종으로 선포합니다.

6 “어둠 속에서 빛이 비추어라.” 하고 이르신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을 비추시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느님의 영광을 알아보는 빛을 주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 20-2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0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21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23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25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고소한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너를 형리에게 넘겨, 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

26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넘어서야 하는 벽이 있습니다.

그건 아마도 용서라는 벽이겠지요.

때로는 용서라는 관문이 없는 사랑의 관계는 없으리라 생각해봅니다.

더 깊어지기 위해,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해 용서는 꼭 들어가야 하는 문인 듯싶습니다.

그리고 많은 이는 그 용서라는 벽 앞에서 괴로워합니다.

 

용서는 인간의 의지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미칩니다.

그러다 보니 타인과의 관계이든 자신과의 관계이든 하느님의 힘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요청하는 사람, 하느님의 힘으로 넘어서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용서하라는 명령은 어쩌면

용서하기 위해 하느님을 당신 삶에 초대하라는 명령처럼 여겨집니다.

그토록 어려운 용서이기에 오히려 하느님을 당신 삶으로 끊임없이 청하라는 명령처럼 여겨집니다.

 

용서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정말 용서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져본 사람만이 알 것입니다.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 말처럼 쉽지 않아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아는 사람만이 압니다.

 

관계의 복잡성만큼 이 복잡성을 사랑을 위한 단계로 본다면 -

용서의 필요성이 다가옵니다.

 

만약 당신이 당신을 더 많이 사랑하려면 당신 자신도 당신을 용서하려는 작업이 필요함을 아십니까?

 

나는 그저 묵묵히 그 벽을 넘어서려 노력할 뿐입니다.

거기에 자유가 있습니다.

결과로서 용서가 이루어지는지를 논의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저 용서하기 위해 애썼고 그것으로 충분한 거입니다.

 

사람들은 결과로서 용서했는지를 따지겠지만,

나는 용서하기 위해 하느님을 얼마나 필요로 하였는지를 생각할 뿐입니다.

 

용서했으면 좋은 것이고 아직 용서하지 못했다면 용서하기 위해 하느님께 의지할 수 있으니 이 또한 좋은 것이 아닙니까?

 

그렇게 나는 하느님을 내 삶 안에 더욱 많이 모시게 되었으니 자유롭습니다.

 

~ 이것을 알면 당신은 얼마나 참 자유를 누릴 수 있을는지요?

자유롭기 위해 당신은 자신을 얼마나 더 구속하였는지요?

 

아름다운 구속입니다.

Comment

(Enter the auto register prevention c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