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과 묵상

Title오늘의 말씀과 묵상. 연중 제14주일(07/09/2023)2023-07-08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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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과 묵상. 연중 제14주일(07/09/2023)

 

<1독서> 즈카르야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9, 9-10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9 “딸 시온아, 한껏 기뻐하여라. 딸 예루살렘아, 환성을 올려라. 보라, 너의 임금님이 너에게 오신다. 그분은 의로우시며 승리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겸손하시어 나귀를,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

10 그분은 에프라임에서 병거를, 예루살렘에서 군마를 없애시고 전쟁에서 쓰는 활을 꺾으시어 민족들에게 평화를 선포하시리라. 그분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강에서 땅끝까지 이르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2독서>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8, 9.11-13

 

형제 여러분, 9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기만 하면, 여러분은 육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지 않으면, 그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11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는 당신의 영을 통하여 여러분의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12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우리는 육에 따라 살도록 육에 빚을 진 사람이 아닙니다.

13 여러분이 육에 따라 살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힘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 25-30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26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27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누가 하느님을 알아볼 수 있는가?

 

예수님 시대에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았던 이들은 별로 없습니다.

사실 누구나 주님을 섬기고 하느님의 길을 따른다고 말하지만, 막상 하느님이 오시면 진정 우리가 하느님을 알아볼 수 있을지를 늘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반대편에 있던 사람들, 즉 하느님께 정통하고 열성으로 신앙을 살았던 이들은 오히려 하느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율법학자, 바리사이인들, 사두가이파 사람들, 그리고 대부분의 유대인.

가장 하느님을 잘 안다고 생각했던 이들이 하느님의 반대편에 서게 된 것입니다.

 

오히려 철부지 어린이와 같은 이들, 가난한 이들, 죄인 중 몇몇만이 하느님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느님이 간절히 필요하고, 하느님만 의지할 수밖에 없으며, 그런 참담한 가운데, 그런 무거운 짐 지고 힘겨운 가운데에서도 하느님을 찾는 사람만이 하느님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이것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꼭 필요하다기보다 적당한 보험처럼 하느님을 대하고 섬기고 있지는 않은지요?

우리가 하느님을 우리 삶에 안전판이나 화려한 장식이나 미래에 대한 담보물 정도로만 여긴다면 우리는 하느님을 만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각자는 내가 만난 하느님에 관한 이야기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 만남을 정작 간절히 원하고 있는지도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만의 복음을 써 내려가야 합니다.

내가 만난 하느님, 내가 만난 예수님 이야기에 내 삶에 있어야만 합니다.

 

하느님이 없어도 화려한 종교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간절함이 없는데 얻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종교인은 많아도 신앙인은 적습니다.

 

정작 하느님이 당신 안에 머물고 싶지만 당신이 그리 깊이 원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여러분께 하나의 질문으로 이 묵상을 마칩니다.

 

당신은 하느님을, 예수님을 아십니까? 그분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까?”

여러분께가 아닌 제 자신에게 무엇보다 던지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렇게 고백하고 싶습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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