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과 묵상

Title오늘의 말씀과 묵상. 연중 제15주간 화요일(07/18/2023)2023-07-18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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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과 묵상. 연중 제15주간 화요일(07/18/2023)

 

<1독서> 탈출기의 말씀입니다. 2, 1-15

 

그 무렵 1 레위 집안의 어떤 남자가 레위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2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기가 잘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겨 길렀다.

3 그러나 더 숨겨 둘 수가 없게 되자, 왕골 상자를 가져다 역청과 송진을 바르고, 그 안에 아기를 뉘어 강가 갈대 사이에 놓아두었다.

4 그리고 아기의 누이가 멀찍이 서서 아기가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5 마침 파라오의 딸이 목욕하러 강으로 내려왔다. 시녀들은 강가를 거닐고 있었는데, 공주가 갈대 사이에 있는 상자를 보고, 여종 하나를 보내어 그것을 가져오게 하였다.

6 그것을 열어 보니 아기가 울고 있었다. 공주는 그 아기를 불쌍히 여기며, “이 아기는 히브리인들의 아이 가운데 하나로구나.” 하였다.

7 그러자 아기의 누이가 나서서 파라오의 딸에게 말하였다. “제가 가서, 공주님 대신 아기에게 젖을 먹일 히브리인 유모를 하나 불러다 드릴까요?”

8 파라오의 딸이 그래, 가거라.” 하자, 그 처녀가 가서 아기의 어머니를 불러왔다.

9 파라오의 딸이 그에게 말하였다. “이 아기를 데려다 나 대신 젖을 먹여 주게. 내가 직접 그대에게 삯을 주겠네.” 그리하여 그 여인은 아기를 데려다 젖을 먹였다.

10 아이가 자라자 그 여인은 아이를 파라오의 딸에게 데려갔다. 공주는 그 아이를 아들로 삼고,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 냈다.” 하면서 그 이름을 모세라 하였다.

11 모세가 자란 뒤 어느 날, 그는 자기 동포들이 있는 데로 나갔다가, 그들이 강제 노동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때 그는 이집트 사람 하나가 자기 동포 히브리 사람을 때리는 것을 보고,

12 이리저리 살펴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에, 그 이집트인을 때려죽이고서 모래 속에 묻어 감추었다.

13 그가 이튿날 다시 나가서 보니, 히브리 사람 둘이 싸우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잘못한 사람에게 당신은 왜 동족을 때리시오?” 하고 말하였다.

14 그자는 누가 당신을 우리의 지도자와 판관으로 세우기라도 했소? 당신은 이집트인을 죽였듯이 나도 죽일 작정이오?” 하고 대꾸하였다. 그러자 모세는 이 일이 정말 탄로 나고야 말았구나.” 하면서 두려워하였다.

15 파라오는 그 일을 전해 듣고 모세를 죽이려 하였다. 그래서 모세는 파라오를 피하여 도망쳐서, 미디안 땅에 자리 잡기로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 20-24

 

20 그때에 예수님께서 당신이 기적을 가장 많이 일으키신 고을들을 꾸짖기 시작하셨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1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

22 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티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23 그리고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너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소돔에서 일어났더라면, 그 고을은 오늘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24 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운명은 나를 어디로 데려왔는가?

 

이곳 이땅에서 나는 살아갑니다.

어떤 이유인지 이제 좀 돌아볼 때가 아닐까요?

만약 내가 신앙인이라면 하느님과 관련하여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나는 왜 여기 있나요? 하느님.

그것을 물어 알게 되면, 그것을 깨달아 알게 되면 삶의 자세는 얼마나 바뀔까요?

 

이렇게 신앙인이라면 오늘 자신의 이유를 하느님 안에서 찾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걸 거창하게 존재의 이유라고 말해보고 싶습니다.

 

모세는 그렇게 자신의 존재 이유를 깨달아가기 시작합니다.

그는 히브리 노예의 아들이었지만 죽음을 피해 강물을 떠돌다 파라오 공주에게 발견되고 그렇게 시작된 그의 삶 어느 순간에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가 그 순간 시작했던 삶의 모습은 도망치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아직 분명히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토록 많은 기적을 행하셨다 스스로 밝힌 곳은 코라진과 벳사이다입니다. 그리고 카파르나움입니다.

이 세 마을은 갈릴래아 호수 북쪽의 마을들입니다.

그럼 그들은 이 기적의 이유를 찾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기적의 모습에 환호했지만 기적의 이유를 묻지 않았기에 그들은 회개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몰랐던 것입니다.

 

시간의 수레바퀴는 그렇게 돌고 돌아 오늘의 나에게 묻습니다.

너는 왜 이곳에 있느냐?’

너의 존재의 이유는 무엇이더냐?’

너는 왜 오늘 이렇게 또 하루를 얻었더냐?’

 

하느님의 바라심이 내게 있으며 그것이 무엇인지 찾는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오늘 한번쯤 내가 나의 존재 이유에 대해 물어보면, 찾아보면 어떨까요?

 

"행위는 존재를 따른다" (Agere seguiture Es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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