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과 묵상. 연중 제19주간 수요일(08/16/2023) <제1독서> ▥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34, 1-12 그 무렵 1 모세가 모압 평야에서 예리코 맞은쪽에 있는 느보 산 피스가 꼭대기에 올라가자, 주님께서 그에게 온 땅을 보여 주셨다. 단까지 이르는 길앗, 2 온 납탈리, 에프라임과 므나쎄의 땅, 서쪽 바다까지 이르는 유다의 온 땅, 3 네겝, 그리고 초아르까지 이르는 평야 지역, 곧 야자나무 성읍 예리코 골짜기를 보여 주셨다. 4 그리고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저것이 내가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너의 후손에게 저 땅을 주겠다.’ 하고 맹세한 땅이다. 이렇게 네 눈으로 저 땅을 바라보게는 해 주지만, 네가 그곳으로 건너가지는 못한다.” 5 주님의 종 모세는 주님의 말씀대로 그곳 모압 땅에서 죽었다. 6 그분께서 그를 모압 땅 벳 프오르 맞은쪽 골짜기에 묻히게 하셨는데, 오늘날까지 아무도 그가 묻힌 곳을 알지 못한다. 7 모세는 죽을 때에 나이가 백스무 살이었으나, 눈이 어둡지 않았고 기력도 없지 않았다. 8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압 평야에서 삼십 일 동안 모세를 생각하며 애곡하였다. 그런 뒤에 모세를 애도하는 애곡 기간이 끝났다. 9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여호수아는 지혜의 영으로 가득 찼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의 말을 들으며,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실천하였다. 10 이스라엘에는 모세와 같은 예언자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주님께서 얼굴을 마주 보고 사귀시던 사람이다. 11 주님께서 그를 보내시어, 이집트 땅에서 파라오와 그의 모든 신하와 온 나라에 일으키게 하신 그 모든 표징과 기적을 보아서도 그러하고, 12 모세가 온 이스라엘이 보는 앞에서 이룬 그 모든 위업과 그 모든 놀라운 대업을 보아서도 그러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 15-2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5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16 그러나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모든 일을 둘이나 세 증인의 말로 확정 지어야 하기’때문이다. 17 그가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교회에 알려라.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19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20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내가 할 수 있는 것의 한계는 명확합니다. 최선을 다하지만 끝내 이루지 못할 것도 있습니다. 그것을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요청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우리가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물론 최선이었나? 하는 성찰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여도 부족함을 늘 있기 마련이고 한계를 넘는 것들도 더러 있습니다. 그러니 그럴 때는 묵묵히 받아들일 마음도 가져야 하겠습니다. 교회도 하지 못할 것이 있기도 합니다. 그럴 때 하느님을 필요로 하십시오. 하느님께 청하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바라는 것보다 더 유익하게 들어주실 것입니다.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 하느님이 아니십니다. 내가 바라는 것을 내 성에 차도록 들어주시지 않을 뿐입니다. 그러니 언제나 하느님께 신뢰를 두며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제게도 사랑하는 육신의 가족이 있습니다. 노부모님이 늙어가시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기도는 없습니다. 동생의 사업이 잘 되라고 바치는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린 조카들이 좋은 대학 가라고 바치는 기도 또한 그렇습니다. 그런 것들을 막거나 이루어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기도드린다면, 만년에 이르신 부모님이 하느님께 더 깊이 의지할 은총을 달라고 청할 것입니다. 동생이 자신의 삶 속에서 하느님을 찾고 그 안에서 의미를 깊이 헤아려 보라 기도드릴 것입니다. 좋은 대학이 아니더라도 삶에서 더 큰 기쁨이 많고 실망치 않고 나아갈 수 있도록 기도드릴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 나의 기도 지향을 다시금 살피고 그 기도의 지향에 맞게 나는 더 마음을 기울일 것이 무엇인지 노력합니다. 구러니 어찌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겠습니까? 만약 그래도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더 큰 하느님의 뜻을 찾을 것입니다. 언젠가 돌아보면 그것이 언제나 더 나는 그들에게 유익했음을 알기에 행복합니다. 은총과 평화가 가득한 하루, 주님 안에서 충실히 걸으시는 하루가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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