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과 묵상

Title오늘의 말씀과 묵상. 연중 제19주간 금요일(08/18/2023)2023-08-18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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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과 묵상. 연중 제19주간 금요일(08/18/2023)

 

<1독서> 여호수아기의 말씀입니다. 24, 1-13

 

그 무렵 1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스켐으로 모이게 하였다. 그가 이스라엘의 원로들과 우두머리들과 판관들과 관리들을 불러내니, 그들이 하느님 앞에 나와 섰다.

2 그러자 여호수아가 온 백성에게 말하였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옛날에 아브라함의 아버지이며 나호르의 아버지인 테라를 비롯한 너희 조상들은 강 건너편에 살면서 다른 신들을 섬겼다.

3 그런데 나는 너희 조상 아브라함을 강 건너편에서 데려다가, 온 가나안 땅을 돌아다니게 하고 그의 후손들을 번성하게 하였다. 내가 그에게 이사악을 주고,

4 이사악에게는 야곱과 에사우를 주었다. 그리고 에사우에게는 세이르 산을 주어 차지하게 하였다. 야곱과 그의 아들들은 이집트로 내려갔지만,

5 나는 모세와 아론을 보내어, 이집트 가운데에서 그 모든 일을 하여 그곳을 친 다음, 너희를 이끌어 내었다.

6 내가 너희 조상들을 이렇게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었다. 그 뒤에 너희는 바다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집트인들이 병거와 기병을 거느리고 갈대 바다까지 너희 조상들의 뒤를 쫓아왔다.

7 그래서 너희 조상들이 주님에게 부르짖자, 주님이 너희와 이집트인 사이에 암흑을 갖다 놓고 바닷물을 끌어들여 그들을 덮쳐 버렸다. 이렇게 내가 이집트에서 한 일을 너희는 두 눈으로 보았다. 너희가 광야에서 오랫동안 머무른 뒤에,

8 나는 너희를 요르단 건너편에 사는 아모리인들의 땅으로 데려갔다. 그때에 그들이 너희에게 맞서 싸웠으나, 내가 그들을 너희 손에 넘겨주어, 너희가 그들의 땅을 차지하게 되었다.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패망시킨 것이다.

9 그 뒤에 모압 임금, 치포르의 아들 발락이 나서서 이스라엘에게 맞서 싸웠다. 그는 너희를 저주하려고 사람을 보내어 브오르의 아들 발라암을 불러왔다.

10 그러나 나는 발라암의 말을 들어 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오히려 너희에게 축복해 주었다. 나는 이렇게 너희를 발락의 손에서 구해 주었다.

11 너희가 요르단을 건너서 예리코에 이르렀을 때에는, 예리코의 지주들, 곧 아모리족, 프리즈족, 가나안족, 히타이트족, 기르가스족, 히위족, 여부스족이 너희에게 맞서 싸웠다. 나는 그들도 너희 손에 넘겨주었다.

12 나는 또 너희보다 앞서 말벌을 보내어, 아모리족의 두 임금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었다. 그렇게 한 것은 너희의 칼도 너희의 화살도 아니다.

13 그러고 나서 나는 너희에게 너희가 일구지 않은 땅과 너희가 세우지 않은 성읍들을 주었다. 그래서 너희가 그 안에서 살고, 또 직접 가꾸지도 않은 포도밭과 올리브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게 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 3-12

 

그때에 3 바리사이들이 다가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무엇이든지 이유만 있으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하고 물었다.

4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읽어 보지 않았느냐? 창조주께서 처음부터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나서,

5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하고 이르셨다.

6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7 그들이 다시 예수님께, “그렇다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려라.’ 하고 명령하였습니까?” 하자,

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너희가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륜을 저지른 경우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는 자는 간음하는 것이다.”

10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아내에 대한 남편의 처지가 그러하다면 혼인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모든 사람이 이 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허락된 이들만 받아들일 수 있다.

12 사실 모태에서부터 고자로 태어난 이들도 있고, 사람들 손에 고자가 된 이들도 있으며, 하늘 나라 때문에 스스로 고자가 된 이들도 있다.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받아들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하느님을 기억하는 사람들.

 

종종 우리가 그리스도교인들이 된 이유는 무엇인지를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란 무엇하는 사람인지를 생각해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을 기억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 기억을 나누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이 어떤 의미이고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기억하고 나누며 전해주는 사람입니다.

이 땅에 오신 하느님이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생각에 미칩니다.

 

하느님, 예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화두(話頭)인 것입니다.

늘 잊지 않고 마음에 떠올리며 되짚어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기도를 드리고 성당에 나아오는 이 모든 일련의 행위들이 바로 하느님을 기억하고 예수님을 이 땅에, 오늘에 현재화시키는 것입니다.

 

종종 저의 기억을 스스로도 탓하고 다른 이들도 그렇게 여기지만,

그래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을 마음에 새겨봅니다.

그래서 기억 속에서 더 많은 감사를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흐트러진 기억 속에서도 하느님과 하느님의 교회는 감사로 남아 있습니다.

나의 부모와 형제에게도 그렇듯 감사를 드립니다.

 

과거는 추억 속에 보정(補正)되고 미화된다고들 말합니다.

부분적인 기억의 일면들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기억의 느낌은 뿌옇지만 감사함입니다.

 

하느님을, 예수님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마음에 다시금 떠올립니다.

 

여호수아를 통해 하느님이 다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결혼하던 시기에 서로 맺었던 사랑의 약속들에 관해 예수님은 말씀해주십니다.

어느새 잊어버렸기에 노여움과 원망과 분노만 남기도 한 우리의 삶에서

하느님은 사랑했던 날들의 기억에 관해 말씀하십니다.

 

어느 처지에 있든 감사하면 참 좋겠습니다.

그가 혹은 그녀가, 하느님과 교회가 내게 주었던 사랑의 기억을 되살리면 참 좋겠습니다.

그러면 더 깊은 추억이 내게 새겨지겠지요?

 

당신의 삶에서 좋았던 그 기억들이 오늘과 내일의 삶에 감사로 넘치기를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좋았던 기억만, 그리운 마음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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