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과 묵상

Title오늘의 말씀과 묵상.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6/7/2020)2020-06-07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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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과 묵상.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6/7/2020)

 

1독서

<주님은, 주님은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다.>

 

탈출기의 말씀입니다. 34,4ㄱㄷ-6.8-9

그 무렵 4 모세는 주님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대로 아침 일찍 일어나 돌판 두 개를 손에 들고 시나이 산으로 올라갔다.

5 그때 주님께서 구름에 싸여 내려오셔서 모세와 함께 그곳에 서시어, ‘야훼라는 이름을 선포하셨다.

6 주님께서는 모세 앞을 지나가며 선포하셨다. “주님은, 주님은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다. 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다.”

8 모세는 얼른 땅에 무릎을 꿇어 경배하며 9 아뢰었다.

주님, 제가 정녕 당신 눈에 든다면, 주님께서 저희와 함께 가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백성이 목이 뻣뻣하기는 하지만, 저희 죄악과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저희를 당신 소유로 삼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2독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 13,11-13

11 형제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자신을 바로잡으십시오. 서로 격려하십시오. 서로 뜻을 같이하고 평화롭게 사십시오. 그러면 사랑과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12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십시오. 모든 성도가 여러분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기를 빕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16-18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찬미예수님! 교우 여러분, 잘 지내고 계시죠?

어제는 갑작스레 세찬 바람이 불어 변화무쌍한 덴버날씨를 체험하였네요.

교우 여러분의 댁에는 별일 없으시죠?

그런데 아침은 너무 맑고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싶어요.

우리 삶의 나날들도 그렇고 맑고 행복한 날이 있다는 것 기억하는 오늘이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신학생때부터 30년이 넘도록 이 신비를 깨우치려 아무리 노력해도 도무지 알 수 없네요.

다만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그 사랑의 신비를 살아야겠다는 다짐만 해봅니다.

 

삼위일체대축일을 맞아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처음 그리스도인이 되었던 많은 이들은 그 신앙 초기부터 도무지 풀리지 않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유대인이었죠. 유대인들은 어렸을때부터 주 너희 하느님은 한 분이시다라는 계명을 입에 달고 살 정도였어요. 그런데 그들은 어떻게 예수님을 주님, 즉 하느님이라고 고백하게 되었을까요? 하느님은 한 분이신데 어떻게 예수님이 하느님이신지 정말 이해되지 않는 신앙의 신비였답니다.

 

오늘 제2독서의 저자인 사도 바오로도 그랬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열심한 유대인이었고 정말 둘째 가라면 서러운 정도의 열심을 가진 이였습니다. 그런 그의 입에서 예수님이 주님이시라고 고백하는 것은 하느님 성령의 도우심이 아니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신비이지요. 그가 어떻게 그런 신앙의 고백으로 자신을 이끌었는지 그 자신도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다만 저는 그가 하느님 사랑에 깊이 다가갔음을 추측해 볼 뿐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그런 삶을 살면 좋겠습니다.

누군가 일러준 하느님이 아니라 나의 하느님을 붙들고 고백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내 삶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하느님 문제를 가지고 오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나의 하느님을 발견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나의 하느님이 사랑이시라고 고백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고민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무수히 많은 시간들 속에 하느님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실패에 빠져들어도 결코 하느님에 관한 나의 생각을 놓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성령께서 우리 입을 통해 예수님이 하느님이시라고 그래서 삼위일체의 신비를 깨닫지는 못하지만 비로소 살게 되었다고 고백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의 문제를 여러분의 삶의 중심에서부터 고민해보시기를 권고드립니다.

 

그래서 당신은 박제화되어 버린 하느님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느님을 고백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당신이 하느님께 한 걸음 더 다가가 마침내 사랑 자체이신 그분 앞에서 감사와 찬미와 찬양을 드리시는 오늘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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